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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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 안동의 임천서당으로 보낸 통문. 1883년 5월 1일 진보향교 회중에서는 안동 임천서당으로 문의한 영양 남경대(攬景臺) 중건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 본문에 따르면 진보는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가 우거하던 고을이며, 남경대 역시 권태시가 학업을 수행하던 곳이라는 인연이 있었다. 또한 남경대를 수리하기 위한 계(稧)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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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에 있는 담박들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 평해황씨(黃氏平海) 가문이 소유한 토지에 황금빛 자라와 관련된 신이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82년 9월 25일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의 향기』와 1990년 6월 30일 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집하고 청송군에서 발행한 『청송군지』에 수록되어 있지만,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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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광여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광여도(廣與圖)』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이다. 충청도 도지도인『호서지(湖西圖)』에는 노성(魯城)이라는 군현명이 보이는데 원래는 니산(尼山)으로 불렸었다. 그러다가 1776년(정조 즉위)에 니성(尼城)으로 이름이 개칭되었다가 1800년(순조 즉위)에 노성으로 다시 한번 바뀌었다. 따라서 이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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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종 연간에 제작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수록된 전국지도. 『동여도(東輿圖)』는 총 23첩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국지도이다. 지도에는 설명과 함께 약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는데, 이 숫자는 현존하고 있는 전도(全圖)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다. 또 지도에는 조선 후기의 상황을 보여 주는 기본적인 인문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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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비변사에서 제작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는 정확한 제작 연대를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내용을 통해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내용의 연도 중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5책의 하동 지도에 표시된 읍치가 1745년(영조 21)에 옮겨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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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안동도회 좌통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안동도회 좌통지도(安東都會左通地圖)』는 정확한 작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안동은 1785년(정조 9)에 대도호부로 복구되었고, 순흥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말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경주도회(慶州都會)』와 『상주도회(尙州都會)』, 『진주도회(晉州都會)』의 지도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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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영남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영남지도(嶺南地圖)』는 경상도의 71개 고을의 지도가 모두 수록되어 있는 채색 필사본 군현 지도집으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대와 작자는 알 수 없다. 1리[약 0.4㎞] 방안 위에 그려진 방안지도로써 가장 축척이 큰 도별 군현 지도집이다. 『영남지도』는 현재 실존하는 다른 도의 군현 지도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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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에서 1768년 사이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조선지도(朝鮮地圖)』는 1767년(영조 43)에서1768년(영조 44) 사이에 만들어진 지도로 추정된다. 전라도를 제외한 7개도의 군현을 그린 것으로 모두 7책으로 되어 있다. 다른 군현지도와는 다르게 주기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위치·거리·방향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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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국의 군현을 그린 『지승』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지도. 『지승(地乘)』은 군사적인 요충지인 관방처와 전국의 군현을 그린 지도로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지도는『경주도회 좌통지도(慶州都會左通地圖)』, 『안동도회 좌통지도(安東都會左通地圖)』, 『호서지도(湖西地圖)』의 일부로 되어 있고,『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與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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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김정호가 제작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실려 있는 조선 전도. 『청구도(靑邱圖)』는 김정호(金正浩)[?~1866]가 만든 대지도로 채색 필사본과 흑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건(乾)과 곤(坤) 두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구도』는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를 저본으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 제작 연대는 최한기(崔漢綺)의 「청구도제(靑邱圖題)」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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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김정호가 제작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실려 있는 조선 전도.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청구도』의 이본은 현재 9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내용적으로는 3개의 유형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에 『청구요람(靑邱要覽)』은 건(乾)·곤(坤) 2권으로 되어 있고, 남북으로 총 29층, 동서로는 22판으로 구분되어 있다. 『청구요람』에는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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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이 그려진 조선 팔도 지도. 『팔도지도(八道地圖)』는 1778년(정조 2) 또는 1838년(헌종 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지도 안에는 조선전도와 각 도별로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리척(里尺)을 사용한 점과 1776년(정조 즉위년)에 개명된 평안도 초산(楚山)과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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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와 진보현의 군현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영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로 제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해동지도』는 채색 회화식 지도로, 「조선전도(朝鮮全圖)」와 「서북피아양계전도(西北彼我兩界全圖)」를 덧붙여 하나의 지도책으로 완성하고 있다. 모두 8책으로 제1책은 경기도, 제2책은 해서전도·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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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송 지역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었다. 도호부란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목(牧)과 군(郡)의 중간에 해당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된 도호부는 모두 44개 처[경기도 7·경상도 7·전라도 4·황해도 4·강원도 5·영안도 11·평안도 6]이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는 31개가 늘어나 모두 75개 처[경기도 8·충청도 1·경상도 14·전라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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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해 대한민국 전역에서 펼쳐진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을 맺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전개되었다. 6.25전쟁은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고 셀 수 없을 정도의 물적 기반이 파괴된 민족 간 전쟁이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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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安奇道)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였다. 소속역은 주로 소로(小路) 또는 소역(小驛)에 속하는 역이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각산리에 있던 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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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강진선(姜進善)[1876~1908]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개항기의 의병장으로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였다. 일제가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다음달 군대를 해산하자 의병에 투신하였으며, 안동, 진보, 청송, 의성 일원에서 이하현·박연백·유시연 등과 합세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4월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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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가톨릭을 구교(舊敎)라고 하는 데 대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 말로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1885년(고종 22)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 목사와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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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송 지역에는 보성부(甫城府)가 설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 공통으로 표현하기를 보성부는 명주관내(溟州管內) 야성군(野城郡)의 영현(領縣)인 진안현(眞安縣)과 상주관내(尙州管內) 문소군(聞韶郡)의 영현인 진보현(眞寶縣)을 합친 것이라 하였다. 진보성(眞寶城)은 진보현이며, 재암성(載巖城)은 진보현과 인접한 진안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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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국권회복운동은 의병 전쟁과 계몽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청송 지역에서는 계몽운동 단체의 결성은 없었다. 서울에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대한국민교육회]가 결성된 이래 1906년 5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1907년 11월 대한협회(大韓協會), 1908년 3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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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하였던 기간 동안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고려시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고을 명칭의 변경과 통폐합이 잦았다. 이에 청송 지역에는 청부(靑鳧), 보성(甫城), 안덕(安德), 진보(眞寶), 진안(眞安), 송생(松生) 등의 고을이 두어졌고, 이들 고을은 인근 큰 고을의 속현(屬縣)으로 주로 존재하였다. 한편, 고려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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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과 관련된 1945년 이전 편찬된 기록 자료와 서적. 오늘날 청송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청송과 진보로 나뉘어 있었다. 청송은 고려 성종대에 청부현(靑鳧縣)으로 고친 이래, 1394년 청보현(靑寶縣)으로 개칭되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소헌왕후의 친정 고향인 청보현을 인근 진보현과 합쳐서 청보군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424년(세종 5)에 다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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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교동마을에 있는 안동권씨 복사공파 집성촌. 광덕리 안동권씨 집성촌은 광덕리 교동마을에 있는 안동권씨 세거지이다. 안동권씨는 경상북도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 성씨는 김씨였다. 권행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고려 태조에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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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청송군은 도로 교통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철도 교통이나 항공 교통 수단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또한 산지가 많고, 여러 지역에서 하천과 산간 계곡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교량 및 터널이 많이 건설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역참(驛站) 제도를 보면 전국에 22개 도(道)가 있었는데, 경상도에서는 경주도(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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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타도하기 위한 의병들의 창의가 일어났다. 청송 지역에서도 의진들이 결성되어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과 진보의진,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청송 출신의 의병 및 1908년 2월경부터 청송 지역에서 의병장 서종락(徐鍾洛)이 지휘하던 청송 동부진과 의병장 남석구(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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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지역에 정착한 무신. 권성전(權聖銓)[1701~1756]의 윗대는 안동부(安東府)의 호장(戶長)을 세습해 온 향리 가문으로 안동의 대표적 토성인 안동장씨(安東張氏), 안동김씨(安東金氏), 안동권씨(安東權氏) 가문과의 혼인을 맺어 왔다. 그러나 권성전의 아버지 권도형(權道亨)은 3남으로서 호장직을 역임하지 못하였고, 권창전(權昌銓), 권성전 형제도 역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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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권소(權昭)[1542~?]는 정유재란 당시 곽재우 의병진을 도와서 공을 세웠던 청송 출신의 의병장이다. 권소의 가문은 아버지 참봉 권덕순 대에 안동에서 진보로 이주해 왔다. 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희(權應禧)[1485~1573]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할머니는 부위(副尉) 백원형(白元亨)의 딸 숙부인(淑夫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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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용이(權龍伊)[1903~1972]는 청송군 진보면 출신으로 안동군 임동면 편항시장(鞭巷市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일제 통치기구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구(龍九), 호는 송담(松潭). 1903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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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안동권씨대동보』에는 권환(權晥)으로 전한다. 권원(權晼)은 1564년(명종 19) 참봉 권덕순(權德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큰형 권소(權昭)와 함께 정유재란 당시 곽재우 의병진으로 창녕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학행으로 영덕훈도에 제수될 만큼 학문적 성취도 뛰어났다. 본관은 안동. 자는 언명(彦明), 호는 한촌(閑村).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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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권의립(權義立)[?~?]은 봉사(奉事) 권소(權昭)의 아들로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한촌(閑村) 권원(權晼)을 따라 곽재우 의병진에 합류하여 창녕 화왕산전투에 참여하였다. 본관은 안동. 자는 여직(汝直). 복야공(僕射公) 권수홍(權守洪)의 13세손이다. 참봉 권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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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무신. 권자성(權自誠)[?~1477]은 청송 출신의 무관으로 청송 안덕의 재지품관(在地品官)인 직장(直長) 권명리(權明利)의 셋째 아들이다. 권명리의 후손들은 경주, 안동, 청도, 의성 등 인근의 재지사족(在地士族)들과 혼인을 확대하고, 내외 후손들이 현달하면서 청송의 명문사족(名門士族)으로 성장하였다. 권자성 역시 다대포 만호(萬戶)를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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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寅), 호는 송만(松巒). 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희(權應禧)[1485~1573]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할머니는 부위(副尉) 백원형(白元亨)의 딸 숙부인(淑夫人) 진안백씨(眞安白氏)이다. 아버지는 귀암(龜巖) 권덕조(權德操)[1507~1594]로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에게 수학하였으며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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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문신. 권효량(權孝良)[?~?]은 세종 대에 관직에 나아가 집현전학사와 의정부사인을 거쳐,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하였던 조선 전기의 관료이다. 1438년 문과에 급제한 이래로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하면서 청송에서 서울로 옮겨가 살게 되었다. 이후 승정원주서, 병조정랑, 사헌부지평, 이조정랑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성균관사예와 실록 편찬기주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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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청송과 진보가 모두 군(郡)이 되어 안동부(安東府)에 속하였다.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道)로 개편됨에 따라 경상북도 청송군과 진보군이 되었다. 1911년 동리(洞里) 통폐합에 이어 1914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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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지역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 금융기관은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자금을 중개하여 돈의 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금융기관은 취급하는 금융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은행, 은행과 유사한 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 보험 회사, 증권 회사, 기타 금융기관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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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에 정착한 문신이자 의병장. 김사형(金士亨)[1541~?]은 형 김사원(金士元)[1539~1601]과 동생 김사정(金士貞)[1552~1620]과 함께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 기반을 마련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동생 김사정과 아들 김한(金澣)과 함께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 의병진에 참여하였다. 그 이후 가족들을 이끌고 진보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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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김순룡(金舜龍)[1553~?]은 안동과 진보 일대의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학자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창녕(昌寧)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郭再祐) 의병진에 참전하였으며, 전란 이후 진보의 문풍을 쇄신하기 위하여 봉람서원(鳳覽書院)을 건립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여윤(汝允), 호는 어천(漁川).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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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완이(金完伊)[1881경~?]는 1906년 3월부터 4월 24일까지 이하현의진(李夏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완이는 1881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진보·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하현의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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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김종달(金鍾達)[1864~1909]은 청송 출신의 의병으로 1906년 창의한 신돌석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09년 8월 11일 현서면 백자리에서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김종달은 1864년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백자리(柏子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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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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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3월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진압을 돕기 위해 경상도 청송과 진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일. 무신창의(戊申倡義)는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 탈취를 기도한 사건으로, 무신년(戊申年)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 또는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의 난(李麟佐-亂)이라고 한다. 이에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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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문거역(文居驛)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으로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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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어천리 밀양박씨 돈와공파 종중에서 소장하여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 밀양박씨 돈와공파는 1623년(광해군 15) 돈와(遯窩) 박유도(朴維度)[1600~?]가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감곡리]에 일시 거주하다가 어천리(魚川里)로 옮겨 정착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박유도의 이주는 당시 인조반정과 관련이 깊다. 박유도의 아버지 박자흥(朴自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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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학자. 박언필(朴彦弼)[?~?]은 조선 전기 경상도 진보현에 정착한 학자이다. 중종 연간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본관은 춘천(春川). 자는 몽뢰(夢賚), 호는 도은(島隱). 고조할아버지는 축산만호(丑山萬戶) 박봉우(朴逢雨)로 처음 춘천에서 용궁의 대죽리로 이주했다가, 다시 진보의 북평리(北坪里)로 이주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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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병자호란은임진왜란(壬辰倭亂)과 함께 양란(兩亂)이라 불리며, 나라와 백성들에게 미증유의 피해를 입혀 큰 충격을 주었던 전쟁이다. 또한 조선 국왕이 이전까지 오랑캐라 부르며 천대했던 여진(女眞)의 청(淸)나라 황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표하며 항복했던 치욕적인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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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보성군(甫城郡)은 조선 전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파천면 일대에 있던 지명이다. 조선 전기에 단행된 군현(郡縣) 통폐합 과정에서 1394년(태조 3) 속부(屬府)로 존재했던 보성부(甫城府)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그러면서 1394년~1414년(태종 14) 사이에 보성군으로 읍격(邑格)이 조정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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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있었던 고려 전기의 행정구역. 보성부(甫城府)는 기존의 진보현(眞寶縣)과 진안현(眞安縣)을 합쳐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1018년(현종 9) 예주로 이속되기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파천면 일대에 있었다. 재암성(載巖城)이라고도 불렀다. 보성부는 고려 전기 기존의 진보현과 진안현을 합친 것이다. 고려 건국과 후삼국을 통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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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경상도 진보현에 건립되었던 사설 교육기관. 봉람서원(鳳覽書院)은 이황(李滉)[1501~1570]을 배향하기 위하여 1602년 경상도 진보현(眞寶縣) 옥동(玉洞)[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 건립되었다. 봉람서원은 창건 당시 경상도 진보현의 관내에 있었다. 1602년(선조 35) 정탁(鄭琢)[1526~1605]이 쓴 「옥동서원기(玉洞書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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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부남면은 청송군의 동남쪽에 있으며 동쪽과 남쪽 일부는 포항시 북구 죽암면과 접해 있으며, 나머지 남쪽 일부는 현동면과 접하고 있다. 서쪽은 안덕면과 접하며, 북쪽은 주왕산면과 경계하고 있다. 감연리를 비롯한 9개의 법정리와 17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청송부(靑松府)의 남쪽에 위치하므로 부남면(府南面)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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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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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지역에서 회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지역사회 개발을 위하여 설립된 신용 협동 기구. 새마을금고는 1963년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당시 명칭은 농촌신용조합이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상호부조와 협동 정신인 보(寶), 계(契), 두레, 품앗이 등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초기에는 농촌의 자연 마을 단위로 조직되었으며, 그 규모도 영세하였다.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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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고락(徐高洛)[1867~1909]은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다가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백자동(柏子洞)에서 체포되었다. 영덕경찰서로 압송되던 중, 영덕군 동면 주동(酒洞) 산간에서 도주를 시도하다 호송하던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서고락은 경상도 청송도호부 남면 마평(馬坪)[지금의 경상북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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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성균관유도회의 지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11월 30일 서울 성균관 명륜당(明倫堂)에서 전국 유림대회가 개최되었다. 거기에서 유교의 전통에서 비롯된 우리 민족의 정신적 토대인 도의(道義)의 혁신과 향상을 도모하고, 성균관대학(成均館大學)의 설립을 위한 재단의 구성 등을 결의하였다. 이에 1946년 3월 13일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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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1423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송생현(松生縣)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1423년(세종 5) 청보군과 통합되어 청송군으로 개편될 때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과 주왕산면 일대에 있던 지명이다. 고대 송생현의 연혁은 확인되지 않으며,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 존재가 확인된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지방통치를 위한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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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송학서원(松鶴書院)은 숙종 연간[1674~1720]에 건립되었다. 이황(李滉)[1501~1570], 김성일(金誠一)[538~1593],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배향하고 있다. 이황의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시호는 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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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수정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에 위치한 고려 후기 사찰 수정사(水晶寺)의 불전이다. 수정사 대웅전은 1715년(숙종 41)에 건립되었다. 청송읍에서 진보 방면 국도31호선을 따라 가다가 ‘수정사 대웅전’과 ‘왕평 묘소’ 팻말이 있는 묵계솔밭 입구에서 우측으로 1.8㎞ 정도 가면 ‘남각산 수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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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는 진성이씨[진보이씨] 시조 이석의 묘역. 진성이씨(眞城李氏)는 고려말 진보현의 향리인 이석(李碩)[생몰 연대 미상]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묘갈명에 의하면 이석은 진보현의 현리(縣吏)로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아들인 송안군 이자수(李子脩)가 귀하게 되어 봉익대부 밀직사(奉翊大夫密直使)에 추봉되었다. 2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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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신상익(申相翼)[1852~1919]은 1896년 4월 창의(倡義)한 진보의진(眞寶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창의장(倡義將) 방산(舫山) 허훈(許薰)을 대신하여 진보의진의 업무와 전략을 전담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보(敬輔), 호는 가천(可川). 1852년 3월 19일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서 아버지 사은(泗隱) 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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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보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문길(文吉). 아버지는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낸 신언(申漹), 어머니는 별제(別提)를 지낸 김제(金濟)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참봉(參奉)을 지낸 안택(安宅)의 딸 죽산안씨(竹山安氏), 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신종위(申從渭),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 부인은 여절교위(勵節校尉) 민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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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보에 정착한 학자. 신지(申祉)[1424~1517]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며 사당에 참배하는 등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효성과 청렴함을 인정받아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독경(篤慶), 호는 풍호정(風乎亭). 아버지는 강계부교도(江界府敎導)를 지낸 신영석(申永錫), 어머니는 송생현감무(松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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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원(明遠), 호는 서봉(西峰). 아버지는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낸 신언(申漹), 어머니는 별제(別提)를 지낸 김제(金濟)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참봉(參奉)을 지낸 안택(安宅)의 딸 죽산안씨(竹山安氏), 할아버지는 호군(護軍)을 지낸 신종위(申從渭),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 부인은 안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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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사용(司勇)을 지낸 신광위(申光渭),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신권(申眷), 증조할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를 지낸 신명창(申命昌)이다. 신척(申滌)[?~1637]은 인조(仁祖) 재위 연간[1623~1649]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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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字)는 백한(伯翰), 호(號)는 천재(泉齋). 아버지는 신치혁(申致赫), 어머니는 조석일(趙錫一)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 할아버지는 신택렬(申宅烈), 증조할아버지는 신준성(申峻成)이며, 부인은 조우각(趙友慤)의 딸 한양조씨와 이상문(李相文)의 딸 월성이씨(月城李氏)이다. 신필흠(申弼欽)[1806~1866]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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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고려 충신 심원부의 신도비. 심원부 신도비는 청송군 파천면 덕천1리 경의재(景義齋) 앞에 있는 비석이다. 심원부(沈元符)[1330~?]는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서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등과 같은 고려 말 충신들과 두터운 교의를 맺었다.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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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사반(士胖)·덕응(德應), 호는 둔와(遯窩). 아버지는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을 지낸 안택(安宅), 어머니는 의인(宜人) 야성정씨(野城鄭氏), 할아버지는 숙릉참봉(淑陵參奉)을 지낸 안사원(安嗣源),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안종인(安從仁), 부인은 이지영(李之英)의 딸 정부인(貞夫人)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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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청송군에는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이 발견되었기에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고구려의 영역이었으며, 이 시기 고분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신라 계열이다. 통일신라시대 칠파화현(七巴火縣)은 진보현(眞寶縣), 조람현(助攬顯)은 진안현(眞安縣), 청기현(靑己縣)은 적선현(積善縣), 이화혜현(伊火兮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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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조선시대 교통·통신 기관. 역원(驛院)에서의 ‘역(驛)’은 전통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원(院)’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출장하는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國營) 숙식시설이다. 역과 관련되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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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의 오누지에서 벌어진 진성의진과 일본군의 전투. 1906년 4월 이현규(李鉉圭)가 이끄는 진성의진(眞城義陣)이 장수령전투(長水嶺戰鬪)에서 패하고 도주하는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 계급] 무토[武藤] 부대를 오누지에서 격파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魚川)까지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에 온 민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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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우영조(禹永朝)[1870~1963]는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진보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1907년 10월 9일 입암전투(立巖戰鬪) 이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청송동부진을 맡아서 불굴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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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유교는 자기 수양과 학문을 통한 경세치민(經世治民)의 도리를 밝힌 공자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공자(孔子)의 사상이 한대(漢代)를 거치면서 음양오행설과 결합하여 우주론으로 확대되었는데, 송대(宋代)에 이르러 이기(理氣)와 성정(性情)의 개념이 결합되면서 성리학이라는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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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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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에 정착한 학자.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사각(士恪), 호는 선암(仙巖). 아버지는 이지번(李之蕃),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이인필(李仁弼),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를 지낸 이은동(李銀仝), 부인은 선교랑(宣敎郞) 박세필(朴世弼)의 딸 의인(宜人)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이엄(李儼)[1568~?]은 15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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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의백(宜伯), 호는 계변(溪邊). 아버지는 강예습독관(講隷習讀官)을 지낸 이영무(李英茂)이다. 형 이응인(李應仁)이 무과 급제 후 판관(判官)을 지냈다. 이응의(李應義)[1569~?]는 경상도 진보현 상리(上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거주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에 가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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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이전평역(梨田坪驛)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다른 역과 달리 조선 후기인 1711년(숙종 37)에 설치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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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보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호는 봉은(鳳隱). 경흥군(慶興君) 이신우(李申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를 지낸 이천명(李天明), 어머니는 방희적(方希迪)의 딸 방씨 부인, 할아버지는 이흡(李洽), 증조할아버지는 과주현감(果州縣監)을 지낸 이자장(李子長), 부인은 김서유(金西裕)의 딸 김씨 부인이다. 이조(李稠)[?~?]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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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현규(李鉉圭)[1874~1917]는 1905년 11월 청송군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에서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청송군 진보읍 오누지전투 참전과 울진군 죽변읍 왜관 격파 등으로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908년 일본군의 추격과 고종의 의병 해산령 등으로 의진을 해산하고 은거하였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하현(夏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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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임용상(林龍相)[1877~1954]은 1905년 의병을 일으킨 뒤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합류하여 활동하다가 독자적인 의병 부대를 이끌었다. 1908년 이후 청도, 청송,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중 잡혀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출옥 후 의열단(義烈團)과 독립군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나주(羅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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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의 제2차 침략 전쟁을 따로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도 한다. 처음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명군(明軍)이 원군으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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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장수령(長水嶺) 일대에서 벌어진 진성의진과 일본군의 전투. 1906년 4월 이현규(李鉉圭)가 이끄는 진성의진(眞寶義陣)이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장수령 일대에서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 계급] 무토[武藤]가 이끄는 일본군 부대를 맞아 교전 끝에 격퇴시켰다. 1905년 11월 일제는 친일 정부대신(政府大臣)들을 조종하여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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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북국시대의 지명. 재암성(載巖城)은 930년 장군 선필(善弼)이 고려에 귀부(歸附)할 때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파천면 일대에 있던 지명이다. 보성부(甫城府)의 다른 이름으로 호족(豪族)이었던 선필의 근거지였다. 재암성의 설치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남북국시대 재암성은 장군 선필의 근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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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옹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청송 지역에서만 나는 오색 점토로 만든 옹기를 말한다. 옹기는 전통적으로 장류, 음식 등을 보관하는 저장 용기로 널리 이용되어 왔으나, 1960년대 말부터 그 사용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에 옹기 보호책의 일환으로 1989년 옹기 인간문화재 지정, 1990년 옹기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옹기를 보호 및 지원하고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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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규명(趙圭明)[1860~1935]은 1896년 김도화(金道和)가 이끄는 안동의진(安東義陣)에 입진하여 경북상도 북부 지역 7읍 연합의진(聯合義陣)이 추진한 함창 태봉전투(胎封戰鬪)에 참전하였으며, 의관(議官)을 지냈다. 조규명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분노하여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김도화가 이끄는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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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조람현(助攬縣)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진안현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일대에 있던 주현(州縣)으로 행정뿐만 아니라 군사 구역이기도 하였다.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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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건국부터 1895년 갑오개혁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역사. 청송 지역은 고려 전기 이후 조선 전기까지 독자적인 군현(郡縣)을 구축하지 못하고 지역의 이합(離合)이 빈번한 상태에 있었다. 1423년(세종 5) 청부현(靑鳧縣)과 송생현(松生縣)을 합쳐 새로이 청송군(靑松郡)이 되면서 이로부터 진보현(眞寶縣)과 함께 두 고을로 나뉘어 별개의 지방행정단위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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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활약한 청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호는 송정(松亭), 시호는 문정(文貞). 아들은 조담(趙聃), 조치(趙恥), 조이(趙耳)가 있다. 조용(趙庸)[?~1426]은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전교주부(典校注簿)·삼사도사(三司都事)에 제수되고, 계림부판관(鷄林府判官)으로 나가 고을을 잘 다스려 치적을 쌓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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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초월적 존재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이나 유물, 또는 관습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청송군에서의 종교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부족국가시대에는 주술사인 샤먼을 통한 토속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이후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외래 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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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중들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집성촌. 중평리 평산신씨 집성촌은 중평리 중들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이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이다. 평산신씨 영해파(寧海派)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13세손 신현(申賢)이 영해군(寧海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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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엽연초생산협동조합. 엽연초생산협동조합은 연초를 경작하는 농민의 사회적·경제적 권익 보호와 연초 경작기술의 개량·발전을 위하여 1910년에 출범하였다. 1930년 4월 1일 영양연초경작조합에서 분리된 진보연초경작조합의 설립부터 시작된 진보엽연초생산협동조합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균형 있는 발전과 선진화를 선도하는 모범적 농촌지도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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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 경상북도 진보군 지역에서 결성된 의병 부대. 진보의진(眞寶義陣)은 1896년 4월 7일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임은리[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의 방산(舫山) 허훈(許薰)이 창의하였던 의병진이다. 창의 이후 주변 의병진과 협조 체제를 형성하고 활동하였다. 1894년 갑오변란(甲午變亂)과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변복령(變服令), 단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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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 진보향교(眞寶鄕校)는 조선시대 진보현(眞寶縣)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교육의 공간이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향교를 출입한 집단은 진보현의 재지세력(在地勢力)이었다. 그들은 교육과 제사를 위해 향교를 출입하면서 향론을 형성하는 등 향촌 자치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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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진성이씨는 청송 지역의 호족이며 토성 성씨로 고려시대부터 세거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진성이씨를 진보이씨라고도 한다. 진성이씨에 대해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보면,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修)가 1364년(공민왕 13) 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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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안리는 진보면의 중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진안1리부터 진안4리까지 네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진안, 새밭골, 못골, 형제방우마을 등이 있다. 예부터 진보현(眞寶縣)의 소재지로 있던 마을로 진보와 같이 참으로 보배스러운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안은 본리가 시작된 마을이다. 새밭골은 진안리에서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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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고려 태조 때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진안현(眞安縣)은 757년(신라 경덕왕 16)부터 고려 태조 때 진보현과 합쳐 보성부로 개편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雅化)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조람현(助覽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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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대한민국의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중국 청나라를 왕래하던 사신들에 의하여 접하게 되었고, 학자들에 의하여 ‘서학(西學)’이란 이름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 서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앙이 싹터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런 박해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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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에 있는 이원좌 작품 「청량대운도」 전시관. 청량대운도전시관은 이원좌 화백이 그린 대작 그림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가로 46m, 높이 6.7m]를 전시하기 위한 시설이다. 「청량대운도」는 청량산을 배경으로 그린 실경 산수화이다. 이원좌 화백이 서울 천도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9년에 청량산을 답사하며 직접 스케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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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년부터 1423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청보군(靑寶郡)은 1418년(세종 즉위년) 청부현(靑鳧縣)과 진보현(眞寶縣)을 합병하여 만든 지명으로 1423년(세종 5)까지 존속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파천면·부남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년) 이조(吏曹)는 진보현의 속현(屬縣)이었던 청부현이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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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청부현(靑鳧縣)은 1394년(조선 태조 3) 진보현(眞寶縣)과 합병되고 1418년(세종 즉위년) 청보군으로 승격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부남면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청부현은 986년(성종 5) 기존 운봉현(雲鳳縣)의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아울러 이전까지는 야성군(野城郡)[지금의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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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청송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청송민속박물관에는 19세기 말의 교지 17건과 18~19세기의 호구단자와 준호구 14건 등 모두 31건의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이들 고문서는 모두 청송 안덕, 현남에 거주하는 동래정씨, 진보의 진성이씨, 현동의 함안조씨(咸安趙氏), 밀양박씨 가문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청송민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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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경상북도 청송군 지역민과 청송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건립되었다. 동대구, 동서울, 부산 방면의 고속버스와 10곳 방면으로 시내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청송시외버스터미널은 청송군청 입구에서 출구를 따라 약 57m 나와, 우회전하여 군청로를 따라 약 620m를 직진한 뒤,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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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청송영양축산업협동조합 산하 진보 지역 지점. 청송영양축산업협동조합 진보지점은 진보면 지역을 관할지역으로 하면서 지역의 축산 농가 조합원들의 축산업 생산성을 높이고, 조합원이 생산한 축산물의 판로 확대와 유통의 원활을 도모하며, 조합원에게 필요한 기술·자금·자재·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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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청송읍은 청송군의 행정 중심지로서 서쪽과 북쪽으로는 파천면과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영덕군 지품면과 청송군 주왕산면, 북쪽 일부는 진보면과 접하고 있다. 월막리를 비롯한 9개 법정리와 14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1423년(세종 5) 청부현(靑寶縣)이 진보현(眞寶縣)과 분리된 후 송생현(松生縣)과 합쳐지게 되면서 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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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청운역(靑雲驛)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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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파천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칠파화현(漆巴火縣)은 삼국시대부터 757년(경덕왕 16) 진보현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파천면 일대에 있던 주현(州縣)으로 행정뿐만 아니라 군사 구역이기도 하였다.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통치를 위해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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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평산신씨는 신지(申祉)[1424~1517]가 청송으로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안덕면 복리, 진보면 합강리, 파천면 중평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평산신씨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남도 곡성 사람으로 배현경(裴玄慶)·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과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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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한국사의 전개 과정에서 의병(義兵)은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 때의 의병과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의병이 대표적이다. 그중 개항기 및 대한제국기의 의병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전개된 전기 의병[제1차 의병 전쟁, 갑오의병, 을미의병,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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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 큰도랑골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집성촌. 합강리 평산신씨 집성촌은 합강리 큰도랑골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이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한다. 평산신씨 영해파(寧海派)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13세손 신현(申賢)이 영해군(寧海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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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항일의병기념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청송 의병의 복식. 청송항일의병기념공원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및 개항기 청송 지역에서 일어났던 의병 활동과 선열들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항일의병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항일의병기념관에는 개항기 당시 의병들의 활동이 기록된 『적원일기』를 비롯하여 의병장과 의병들이 실제 사용했던 무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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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군 진보면으로 이거하여 진보의진을 결성한 유학자이자 의병장. 허훈(許薰)[1836~1907]은 근기남인(近畿南人)의 학풍과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이자, 1896년 경상북도 진보에서 창의하여 진보의진(眞寶義陣)을 결성한 의병장이다. 허훈은 전답 3천여 마지기를 팔아 아우 허위의 의병 활동을 지원하였다. 개항기 의병 활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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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화목역(和睦驛)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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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농협중앙회의 청송군 지역 지부. NH농협은행 청송군지부는 청송군 지역 농업인이 모여 협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기 위하여 1961년 설립되었다. NH농협은행 청송군지부는 지역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바탕으로 지역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함께 국민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