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03
한자 靑寶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18년연표보기 - 청부현과 진보현을 합병하여 청보군 설치
개정 시기/일시 1423년 - 청보군에서 진보현 분리 및 송생현과 병합하여 청송군으로 개칭
관할 지역 청보군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지도보기|파천면지도보기|부남면지도보기

[정의]

1418년부터 1423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청보군(靑寶郡)은 1418년(세종 즉위년) 청부현(靑鳧縣)진보현(眞寶縣)을 합병하여 만든 지명으로 1423년(세종 5)까지 존속하였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파천면·부남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418년(세종 즉위년) 이조(吏曹)는 진보현의 속현(屬縣)이었던 청부현이 세종의 왕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내향(內鄕)이기 때문에 읍격(邑格)을 높이자는 청원을 하였다. 이에 청부현진보현을 병합하고, 두 고을의 명칭을 한 글자씩 따서 청보(靑寶)라 명명한 뒤, 군(郡)으로 읍격을 승격시켰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청송군(靑松郡) 진보현 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진보현 편에 청보군의 설치와 합병 관련 내용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청송군 편에는 “본조 태조 3년 갑술(甲戌)[1394년]에 진보와 합하였는데, 무술년(戊戌年)[1418년]에 금상(今上)이 즉위하자, 공비(恭妃)의 내향인 까닭으로 청보군으로 승격시켰다. 송생현(松生縣)은 신라 때의 명칭은 자세히 알 수 없고, 고려 현종 무오년(戊午年)[1018년]에 예주(禮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인종(仁宗) 21년 계해(癸亥)[1143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금상(今上) 5년 계묘(癸卯)[1423년]에 청부에 합하여 이름을 청송으로 고치고, 진보를 쪼개어 다시 현감(縣監)을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보현 편에는 “무술년에 금상이 즉위하자 현(縣)을 청부와 합하여 청보군으로 명명하였다가, 5년 계묘에 다시 떼어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동일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변천]

청부현은 고려시대 동안 예주의 속현으로 있었으며, 1394년(태조 3)의 군현(郡縣) 통폐합 때에는 보성부(甫城府)의 속현으로 이속(移屬)되었다. 그러다 1418년(세종 즉위년) 세종이 즉위하자, 왕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내향이라 하여, 진보현과 합병하여 청보군으로 승격되었다. 이때 고을의 치소(治所)는 옛 청부현에 두어졌다. 하지만 옛 진보현의 백성들은 읍치(邑治)가 멀어 왕래가 불편함을 호소하였다. 이에 1423년(세종 5) 진보현을 독립시키고, 옛 청부현 지역을 송생현과 병합하였다. 그리고 고을 명칭을 청송군으로 변경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보군의 존재는 전통 시대 인적 연고(緣故)에 따라 고을의 읍격이 조정되는 한 사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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