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20
한자 宗敎
영어공식명칭 Religion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창환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초월적 존재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이나 유물, 또는 관습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청송군에서의 종교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부족국가시대에는 주술사인 샤먼을 통한 토속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이후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외래 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근·현대에 들어오며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이전과 비교해 볼 때 불교와 유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갔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신교와 불교가 주축을 이루면서도 유교, 천주교를 비롯한 새로운 여러 신흥 종교가 청송군에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불교]

청송 지역의 불교와 관련된 기록은 지금의 유물이나 설화를 통해 볼 때 통일신라 때 불교가 청송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청송 지역의 설화에 따르면, 대전사(大典寺)보광사(普光寺)는 672년[문무왕 12]에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대전사에 있는 삼층석탑의 일부 부재와 거기에서 발견된 이불병좌상 및 7구의 불상을 감정한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판정되었다. 이를 통해 청송 지역에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공민왕 때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수정사(水淨寺)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서 청송에 하나의 사찰만 창건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청송 지역의 사찰이 원나라의 침략으로 많이 소실되었거나, 무신 집권기에 정권에 저항하다 폐사된 사찰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청송 지역은 교종 다섯 종파 중 하나인 의상대사의 화엄종을 주축으로 하고 있어 선종을 주축으로 한 무신 정권 아래에서 반기를 들었거나 그들에 의해 탄압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억불정책을 펼친 조선시대에 와서는 청송 지역의 불교는 오히려 융성해진 점이 없지 않다. 구전에 따르면, 주왕산을 중심으로 50여 개의 사찰과 암자가 창건과 폐사를 거듭하는 가운데 최소 200여 명 이상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존속되던 유명 사찰로는 대전사, 보광사, 삼성암(三聖庵), 수정사, 보현사(普賢寺), 쌍암사, 주방사 등이 있다. 이후 청송 지역의 사찰은 1963년의 『청송군사』에서는 9개, 1990년의 『청송군지』에서는 22개로 기록되어 있다. 2018년에는 51개의 사찰이 청송 지역에서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교]

청송 지역에 유교가 언제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퇴계 이황의 선조이자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시조인 이석(李碩)이 진보현리(眞寶縣吏)로 있다가 생원시에 합격했다는 기록을 통해 고려 중기 이후에 유교가 전파된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고려의 과거시험이 유교 경전이 중심 과목이었고, 대대로 이곳에서 아전을 지낸 이석이 그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은 당시 청송의 유력 집안에는 이미 유교적 교양이 어느 정도 보급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후 진보 출신인 조용(趙庸)이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낸 것을 보면 청송 지역에 유교의 보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교가 일반에 더 널리 보급된 것은 향교의 건립이 이루어진 조선시대로 보인다. 향교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그곳에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훈도가 있었으며, 또한 그들로부터 유교의 교양을 익히는 30~90명의 학생이 상존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청송 지역에서는 조선 초기에 진보에 향교가 설립되었고, 청송에도 향교가 건립되었다. 이와 함께 청송 지역에 서원이 들어서면서 유교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 다른 지역의 저명한 학자들에게서 수학하거나 그들과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민세경(閔世卿)을 비롯해 민상(閔祥), 목세칭(睦世秤), 서현(徐顯), 서창(徐昌), 이정회(李庭檜), 박성(朴惺), 심학령(沈鶴齡), 조수도(趙守道), 조기영(趙基永), 신즙(申楫)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수학과 교류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안동 퇴계 학맥의 학자들과 이루어진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유교는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1948년 진보에서는 진보유도회(眞寶儒道會)를 결성하여 유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하였다. 이후 1980년대에 유교 신봉자들은 서구의 물질문명으로 인한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문화가 몰락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새롭게 힘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향교를 중심으로 유림이 결집했던 기존의 청송과 진보의 유도회는 전국 유림 단체인 성균관유도회에 가입하고, 청송의 유림에서는 유교의 전국적인 단체인 담수회박약회에 가입하여 유교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교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인재 양성에 고심하고 있다.

[개신교]

개신교가 청송 지역에 처음 전래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즉,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아담스를 비롯한 부해리, 부마태, 안의와, 맹의와, 방혜법 등의 선교사들이 조선인 조사[목사를 도와서 전도하는 교직]들의 도움을 받아 대구·경북 지역을 나누어 돌아다니며 각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청송 지역에 개신교가 전파되었다.

「경상도 예수회 장로교 노회록」에 따르면, 맹의와가 1907년에 청송군 서면에 구산교회(九山敎會)를, 안의와가 1921년에 청송군 서면에 복동교회(福同敎會)와 도동교회(道東敎會)를, 그리고 방혜법 선교사가 1920년에 청송군 동면에 개일교회(開日敎會)를 세웠다고 한다. 선교사들의 이런 활동 뒤에는 김성삼을 비롯한 곽혜민, 구산, 강만호, 강백원, 박영수, 박낙현, 김기수 등의 조선인 조사들의 도움 또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위의 역사를 살펴보면, 청송에 개신교가 들어온 지 어느덧 100여 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긴 역사 속에서 개신교는 청송 지역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육 활동이다. 1918년 수락교회에서 영흥의숙을 설립한 것을 비롯해, 같은 해 구산교회에서 영신학원을, 1920년에는 송서교회에서 일신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개신교의 교육 활동 이면에는 김호준과 김만성을 비롯한 신도들의 물질적 희사와 기부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 밖에도 박동기가 건립한 시온산제국은 청송 개신교의 특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청송 지역의 개신교는 2016년 현재 개신교 계열 종파를 포함해 모두 79개 교회가 있으며, 그중 장로교가 65개가 있다. 현재 장로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파가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

청송 지역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충청도의 홍주, 청양, 덕산 고을 및 전라도와 경상도 상주에서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신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북도 중동부 지역에 위치하면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들이 많은 산악 지대인 청송으로 숨어들어 왔다. 그곳이 바로 안덕면에 있는 노래산으로,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종한과 다른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 1814년 대흉년 때 전지수라는 인물이 천주교 신자들의 재산을 가로챌 요량으로 이들을 관아에 고발했다. 그로 인해 1815년 을해박해가 시작되고, 체포된 신자들은 모진 고문으로 배교를 하거나 끝내 신앙을 지키다 옥사한 사람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7명의 신자가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사형당했다. 이들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諡福)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청송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늘기 시작하여 1959년 무렵에 청송읍 부곡리진보면 진안리에서는 다수의 신자가 모여 신앙 생활을 이어나가고, 그 결실로 1965년 청송성당이 건립되었다. 2017년 현재 청송군의 천주교는 안동교구 관할 아래 청송성당진보성당 2개소와 도평공소 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신종교]

청송 지역의 신종교로는 국제도덕협회[일관도]를 비롯해 성덕도[덕도유지재],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등이 있다. 이들 신종교 대부분은 1960년대 이후에 전파되었으며, 그 시설이나 영향력 면에 있어서는 약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파들이 각자의 교리에 따라 나름대로 활발히 활동하고는 있지만, 지역 출산률의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교세가 약해지는 추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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