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584
한자 眞城李氏
영어공식명칭 JinseongYi Clan|JinseongYissi
이칭/별칭 진보이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진보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시조 이석(李碩)의 묘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산7 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석

[정의]

이석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개설]

진성이씨는 청송 지역의 호족이며 토성 성씨로 고려시대부터 세거하여,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진성이씨를 진보이씨라고도 한다.

[연원]

진성이씨에 대해 '시조공묘갈명(始祖公墓碣銘)에 보면, "이석(李碩)의 아들 이자수(李子修)가 1364년(공민왕 13) 봉상대부 지춘주사(奉常大夫知春州事)로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전공을 크게 세워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송안군(松安郡)에 봉해졌으므로, 그 공으로 이석은 봉익대부밀직사(奉翊大夫密直司)에 증직(贈職)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이석을 시조로 받들고, 선조의 본향지인 진보(眞寶)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성이씨[진보이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인 퇴계 이황(李滉)이 있다.

진보는 신라 초기에는 칠파화현이라 하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진보현으로 고쳤다. 시조 이석의 맏아들 송안군(松安君)이 출사한 시기인 고려 공민왕조 때의 공첩인 ‘전의정안(典儀政案)’ 의 기록에는 본관(本貫)이 보성부(甫城府)로 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까지 공첩에 보성부로 전해 내려왔다. 보성부는 곧 진보현을 통합한 행정명으로 조선 초에 다시 신라 때 이름인 진보현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 본관을 진보로 하였다.

현재 진성이씨는 진보와 진성을 관향으로 각기 사용하는데 그러한 이유는 두 가지 설(說)이 있다. 첫째, 신라 때 진보현의 별호나 별칭으로서 통일 신라 때와 고려 초의 진보성(眞寶城)에의 유래했다는 설이다. 둘째, 조선 중기 중종 때 퇴계 이황의 숙부인 송재공(松齋公)이 반정(反正)에 공로가 있어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지고, 부군(府君)인 노송정공(老松亭公)에게 보조공신으로서 진성군(眞城君)의 군호를 추증받게 한 데서 연유(緣由)했다는 설이다.

[입향 경위]

진성이씨 시조 이석은 ‘누대(累代)’로 진보현(眞寶縣)에 토착해 온 호족의 후예로 고려 충렬왕 때 진보현 아전으로 있다가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충렬왕 이전부터 지금의 청송 지역에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안동으로 이거 하였으나 그 후손들이 청송으로 다시 귀향하여 세거하고 있다.

[현황]

경상북도 청송군 진성이씨[진보이씨]는 진보면 부곡리·이촌리·후평리, 파천면 송강리·신기리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으나, 농촌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집성촌은 그 역할을 상실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집성촌으로는 파천면 송강리 목계마을[약 10가구]이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는 진보이씨는 약 2만 5036명이며 청송군에는 56명이 거주하고 있다. 진성이씨는 전국에 약 5만 2538명이 있으며, 청송군에 217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진성이씨 관련 청송 유적으로는 파천면 신기리에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5호인 기곡재사(岐谷齋舍)가 있다. 또한 진보면 부곡리에 반진재(反眞齋), 세장리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인 백호서당(栢湖書堂)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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