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선생문집』 및 책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454
한자 方壺先生文集-冊板
이칭/별칭 방호문집
분야 구비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보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45년연표보기 - 『방호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소장처 방호정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방호정로 126-26 지도보기
성격 문집|책판
저자 조준도
간행자 유치호|조태호|조용진
권책 5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문집 세로 30.2㎝|가로 20.5㎝
어미 상하 내향 화문 어미
판심제 방호문집(方壺文集)

[정의]

1845년 간행된 조선 중기 청송 출신의 학자 조준도의 시문집과 책판.

[개설]

조선 후기 학자 조준도(趙遵道)[1576~1665]의 문집으로 1845년 간행되었다. 목판으로 제작되었으며, 책판은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방호정(方壺亭)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조준도의 본관은 함안, 자 경행(景行), 호 방호(方壺)로 청송 출신이다. 김언기(金彦璣)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중형, 종형 등은 의병으로 나갔으나, 조준도는 노친 봉양 때문에 함께 나서지 못했는데, 그 심정을 시로 남겼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고을 사람들과 함께 창의(倡義)하고 사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고, 1629년 행의로 천거되어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곧 사퇴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거를 획책하였으나, 다시 화의가 성립된 것을 전하여 듣고 그만두었다. 1664년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어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선영 아래 풍수정(風樹亭)을 지어 늙도록 어버이를 사모하니, 이민성(李民成)·이준(李埈) 등 고을 선비들이 시를 지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편찬/간행 경위]

『방호선생문집(方壺先生文集)』은 1845년 유치호(柳致皜)의 교열을 거쳐, 그의 후손인 조태호(趙泰祜)·조용진(趙龍震)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방호문집(方壺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방호선생문집』은 목판본으로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에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내향 화문 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5㎝, 세로 30.2㎝, 반곽은 가로 17㎝, 세로 19.2㎝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로 되어 있다. 문집은 2017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장서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방호선생문집』 책판은 총 82장으로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방호정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방호선생문집』은 5권 2책으로 권두에 연보와 정종로(鄭宗魯)·강필효(姜必孝)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유치호의 발문이 있다. 권1·2에 시 128수, 서 7편, 정문 2편, 권3·4에 기 1편, 일록 4편, 지 3편, 제문 4편, 묘표 2편, 묘지 2편, 권5는 부록으로 만사(挽詞) 14수, 제문 2편, 행장·묘갈명(墓碣銘)·묘지명·유사(遺事)·제일록후(題日錄後)·제방호정(題方壺亭)·제현기서(諸賢記序)·청포증상언(請褒贈上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회일록(疏會日錄)」은 1608년에 이언적(李彦迪)을 문묘 종사하자는 논의에 대해 임숙영(任叔英) 등이 반대하자, 다시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일기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같은 해 5월 22일부터 6월 21일까지 기록한 글이다. 「정묘록(丁卯錄)」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청송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의병과 군량을 모집한 사실과, 그 당시 호란의 전말을 같은 해 1월 20일부터 2월 21일까지 기록한 것이다.

「유경일록(留京日錄)」은 1629년 주부 벼슬로 서울에 있으면서 당시 우리나라와 명·청나라 사이에 있던 사실을 지방관이 올린 장계에서 보고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같은 해 8월 21일부터 1631년 6월 8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정축일록(丁丑日錄)」은 병자호란 때 향리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의병·군량을 모집한 사실과 당시 호란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이 밖에도 서의 별지에는 학문과 경전에 대한 논의와 예설에 대한 분석이 있다. 「정도백문(呈道伯文)」에서는 난리와 흉년으로 고통을 겪는 백성들을 은의(恩意)로 어루만지고, 곡식을 나누어 주어 구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당시의 정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의의와 평가]

『방호선생문집』의 「정축일록」은 병자년조(丙子年條)는 산실되어 없고, 1637년 1월 1일부터 3월 19일까지만 기록되어 있어 인조(仁祖)[재위 1624~1649] 때 있었던 호란과 정치·외교 등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된다. 또한 「유경일록」은 서울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 서울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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