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23
한자 沈誠之
영어공식명칭 Shim Seongji
이칭/별칭 사행(士行),소류(小流)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1년 12월 18일연표보기 - 심성지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48년 - 심성지 유양흠에게 수학
활동 시기/일시 1896년 3월 - 심성지 청송의진 의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896년 5월 - 심성지 흥해출진소 의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896년 5월 - 심성지 영덕출진소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4년 11월 12일연표보기 - 심성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심성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896년 5월 14일 - 감은리전투
출생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학교|수학지 화양서원 - 충성북도 괴산군
활동지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묘소 두리봉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청송의진 창의장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심성지(沈誠之)[1831~1904]는 1896년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창의장(倡義將)으로 추대되어 의병진의 결성과 진용의 정비, 그리고 의병 활동 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행(士行), 호는 소류(小流). 1831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하수(沈鍜壽)와 어머니 남평문씨(南平文氏)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48년 둔와(遯窩) 유양흠(柳養欽)의 문하에서 중용(中庸)을 배웠으며, 1854년 족숙(族屬) 심용(沈鎔)과 함께 화양서원(華陽書院)을 방문하여 『송자전서(宋子全書)』와 『언행록(言行錄)』 등을 읽고, 청송 지역에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학풍을 열었다. 1888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1894년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활동 사항]

심성지는 1896년 3월 16일 창의(倡義)한 청송의진의 창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896년 3월 12일 청송유림 100여 명이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심성지를 창의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심성지는 3월 13일 객사로 나아가 수락하였다. 그리고 3월 15일 부장(副將) 조성박(趙性璞), 우익장(右翼將) 권성하(權成夏),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參謀)와 서기(書記) 이하를 선발하였다.

3월 16일 심성지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3월 17일 축문(祝文)과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며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中軍將),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심성지는 4월 6일 청송의진의 효율성과 재정 절약을 위해 진영(陣營)을 3영으로 합하고, 참모 4인과 서기 6인으로 편성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진용을 정비하였다. 4월 29일 참모 신동호(申東鎬)의 의견에 따라 예하 각 부대를 창의장 중심으로 편성하여 상영(上營)[摠營 혹은 內營]과 그 아래 각 영으로 편제하고 상영은 대장(大將)을 중심으로 부장, 그 아래 중군(中軍)과 좌·우익장, 그리고 각 영은 사병도총(司兵都摠)과 소모장이 지휘하도록 하였다.

심성지는 군비와 군수품을 수집하여 재정을 확충하는 한편, 4월 17일부터 각 면의 방비를 위해 외방장(外防將)을 설치하여 현서외방장(縣西外防將)에 김진구(金鎭九), 4월 20일 부서외방장(府西外防將)에 심의철(沈宜喆) 등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주변 지역의 의병부대와 연결하기 위해 5월 9일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 5월 22일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를 설치하였다.

5월 12일 의성의진(義城義陣)과 이천의진(利川義陣)이 관군의 공격을 받고 청송으로 들어오자, 5월 13일 청송의진은 진용을 합하여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하였다. 5월 14일 심성지안덕면 근곡(斤谷)에 머물면서 중군장 김대락, 진무(鎭撫) 정진도(鄭鎭燾), 소모(召募) 심능장(沈能璋), 참모 오세로(吳世魯), 서기 윤도혁(尹道爀), 외방장 안병룡(安秉龍), 군사(軍師) 이경식(李景植), 집사(執事) 윤경승(尹景昇) 등이 거느린 포정(砲丁) 60명을 안덕면 감은리에 파견하여 관군과 접전토록 하였다. 이른바 감은리전투(感隱里戰鬪)이다. 이 전투에서 관군 7~8명을 죽이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5월 24일 국왕 고종의 해산 칙유문(勅諭文)을 받고, 심성지를 비롯한 청송의진 지휘부에서는 5월 25일 청송군 관내 8개 면으로 분진(分陣)을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부장 조성박을 현내(縣內), 사병도총 남승철(南昇喆)을 현동(縣東)과 현남(縣南), 중군 김대락을 현북(縣北), 선봉장(先鋒將) 홍병태(洪秉泰)를 현서(縣西),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부동(府東), 좌익장 권성하(權成夏)를 부내(府內), 소모장 심능장을 부서(府西) 등의 외방장에 임명하여 의병진을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하였다. 그 후 청송의진은 6월 15일 경주연합의진(慶州聯合義陣)의 결성에 참여하여 6월 18일 경주성전투(慶州城戰鬪)를 벌였으며, 6월 28일 영덕연합의진(盈德聯合義陣)의 결성에 참여하여, 7월 13일과 14일 영덕전투(盈德戰鬪)를 벌이는 등 8월경까지 활동하였다.

심성지청송의진 해산 후 향리의 소류정(小流亭)에 머물며 제자들과 더불어 향음례(鄕飮禮)를 행하고, 백록동규(白鹿洞規) 및 남전향약(藍田鄕約) 등을 강(講)하며 은거하였다. 1904년 11월 12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4권 2책의 『소류집(小流集)』이 전하는데, 1907년 심의경(沈宜敬)과 심동택(沈東澤)이 편집·간행한 것이다. 시(詩)·서(書)·잡저(雜著) 등으로 편책된 목판본이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 두리봉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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