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14
한자 普施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재관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었던 국영 숙식 시설.

[개설]

보시원(普施院)은 1423년(세종 5)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진보현(眞寶縣) 치소(治所) 인근에 있었던 국영(國營) 숙식 시설의 하나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원(院)은 출장하는 관원(官員)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人家)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로 설립되었다. 이곳을 통해서 지방의 민심이나 지방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보시원의 설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늦어도 조선 전기부터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일대에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보시원에 관해서는 진보현을 소개하고 있는 각종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의 역원조(驛院條)에 기록되어 있으며, 명칭과 치소에서의 이격거리[진보현의 동쪽 1리] 정도만 언급되어 있다.

[내용]

보시원은 조선시대 진보현 관할에 있었던 원의 하나로, 현의 동쪽 1리[약 0.4㎞]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진보현의 관아(官衙)가 있었던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터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변천]

조선시대에는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위해서 객사(客舍)와 원이 준비되어 있었다. 객사는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각 고을의 관(館)이었고, 원은 객사 이외에 각 요로에 설치한 여관(旅館)으로서 보시원도 그러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원은 조선 전기까지는 많이 활용되었으나, 역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이후 점차 본래의 기능을 잃고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주막이나 주점 등으로 전락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보시원도 그러한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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