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171
한자 合江里
영어공식명칭 Hapgang-ri
분야 지리/인문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청송군 진보면 합강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청송군 진보면 합강동에서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3.9㎢
가구수 17가구
인구[남/여] 32명[남자 18명, 여자 14명]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합강리진보면의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합강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율리, 잣나무골, 삼거리, 먹방우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마을 어귀의 울창한 삼림에서 황새와 같은 새들이 많이 있어 아림촌(鵝林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여러 갈래로 흐르는 개천과 냇물이 합수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半邊川)을 이루는 곳이라 하여 합강(合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율리(栗里)는 밤나무두들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래 전 마을이 들어설 때 밤나무를 베어 집을 지을 정도로 밤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잣나무골은 잣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삼거리는 세 갈래의 길이 있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먹방우마을은 빛깔이 검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진보군 하리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리동 일부를 병합하여 합강동이라 해서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합강동합강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합강리를 동·북·서로 휘감아 흐르는 반변천(半邊川)에 의해 반변천의 서쪽 부분과 반변천으로 둘러싸인 중앙 부분, 그리고 반변천의 동쪽 부분으로 크게 3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서쪽 부분은 북쪽의 영등산(嶺登山)[505.2m]과 동쪽의 고산(孤山)[528.4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남동사면으로, 자연마을인 율리에 청송관광농원이 입지하고 있다. 반변천합강리에서 전형적인 감입곡류하천의 형태를 띠면서 북측 하안에는 하안단구가 형성되어 있고, 남측에는 넓게 퇴적된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단구애 역시 곳곳에서 관측된다. 동쪽 부분은 영등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산지 사이의 계곡에 소규모의 농경지가 산재하고 있다.

[현황]

행정리는 합강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면적은 3.9㎢이며, 인구는 총 17세대에 32명[남자 18명, 여자 14명]이 살고 있어 진보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동쪽은 진보면 세장리, 북쪽은 진보면 부곡리추현리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진보면 기곡리, 남쪽은 진보면 후평리와 경계하고 있다.

합강리는 크게 옛 합강리(合江里)와 율리(栗里)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는 마을로 불릴만한 곳은 없으며 합강리 곳곳에 가옥들이 산재되어 분포한다. 이곳에는 처음엔 주씨(朱氏)들이 살았으나 이후 원주이씨(原州李氏)들이 살았으며, 500년 전부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의 후손들이 터를 잡아 살게 되면서 이후 평산신씨(平山申氏)가 주로 살았다고 한다.

산지가 대부분인 주변 환경 때문에 논농사는 거의 지어지지 않는다. 진보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과와 고추 등이 많이 재배된다. 하안단구 일대는 폭우가 내릴 시 물에 잠기는 탓에 침수 피해가 적은 남단부가 농지로 활용된다.

주요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92호인 풍호정 주사(風乎亭廚舍)가 있다. 평산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의 18대손 신지(申祉)가 세웠으며, 그 옆에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신지의 후손 신예남(申禮南)과 그의 부인 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雙節碑閣)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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