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125
한자 德里
영어공식명칭 Deok-ri
분야 지리/인문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청송군 청송면 덕동 개설
개설 시기/일시 1979년 5월 1일 - 청송군 청송면 덕동에서 청송군 청송읍 덕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청송군 청송면 덕동에서 청송군 청송읍 덕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4.4㎢
가구수 403가구
인구[남/여] 788명[남자 399명, 여자 389명]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덕리청송읍의 가장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덕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못골, 도치골, 벽절마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덕리는 덕(德)이 많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인 못골은 예전에 우마(牛馬)를 먹이던 언덕이어서 목동(牧洞)이라고 불렸으나, 이후 마을에 마르지 않는 못이 있다 하여 못골이라 하였다. 도치골은 복숭아 나무가 많아 도화동(桃花洞)이라 하였으나, 이후 한 선비가 정사(亭舍)[경치 좋은 곳에 정자 모양으로 지은 집]를 짓고 강학하니 인심이 후하고 모범을 보인다 하여 도치곡(道治谷)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벽절마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벽절공(碧節公) 심청(沈淸)의 묘소가 이곳으로 정해진 후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송군 부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치동, 신기동, 월막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덕동이라 해서 청송면에 편입되었다. 1979년 청송면이 청송읍으로 승격되어 청송읍 덕동으로 개편되었으며, 1988년 군조례에 의해 덕동이 덕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덕리용전천(龍纏川)을 경계로 방광산(放光山)[518.7m]의 남서사면과 보광산(普光山)[435.1m]의 북쪽사면이 마주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용전천의 북쪽은 하천의 공격사면(攻擊斜面)[하천이 강기슭에 부딪쳐서 깎여지는 부분]으로서 산지의 경사가 급하여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며, 방광산의 남서쪽 계곡에 해당하는 도치골에는 소규모의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용전천의 남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으므로 곳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덕리의 동쪽 경계선을 따라 남쪽으로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행정리는 덕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전체 면적은 4.4㎢이며, 인구는 403세대에 788명[남자 399명, 여자 389명, 외국인 제외]이다. 덕리는 동쪽으로는 청송읍 월막리·금곡리와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천면 덕천리·신흥리와 마주한다. 북쪽으로는 파천면 관리와 맞닿아 있으며, 파천면 신흥리청송읍 금곡리는 각각 남서쪽과 남동쪽까지 그 경계를 접하고 있다.

덕리의 자연마을로는 못골, 도치골, 벽절마 등이 있다. 못골은 마을의 남쪽으로 산사면을 따라 계단식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쪽으로 경작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청송군의 중심지와도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현재 마을 앞쪽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도치골은 덕리의 북쪽 끝에 자리한 마을로 방광산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 마을은 행정구역으로는 덕리에 속하지만 농경지들은 대부분 파천면에 속해 있다. 벽절마는 도치골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활약한 벽절공 심청의 묘소가 이곳으로 정해진 후 생긴 마을로서 현재 마을 동편에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용전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평지는 주로 논으로 이용되며,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작지는 밭으로 이용되어 주로 콩이나 고추가 재배되고 있다. 못골 뒤편의 산사면에서는 사과가 많이 재배된다. 주요 도로에는 국도31호선지방도914호선이 청송교차로에서 교차하며 지나간다. 청송119안전센터덕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덕리 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보광사에는 2014년 보물 제1840호로 지정된 청송 보광사 극락전(靑松 普光寺 極樂殿)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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