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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29
한자 淳昌城隍大神事跡記硏究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98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 간행
소장처 순창군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경천로 33[순화리 315-4]지도보기
소장처 순창 문화원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07-11[남계리 966-7]지도보기
간행처 순창군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경천로 33[순화리 315-4]
간행처 순창 문화원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07-11[남계리 966-7]
성격 단행본|연구 자료집
저자 한국 종교사 연구회
간행자 순창군|순창 문화원
표제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淳昌城隍大神事跡記硏究)

[정의]

1998년에 순창군·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을 중심으로 전라북도 순창군의 성황대신 사적 및 토속 신앙사를 분석한 연구 자료집.

[개설]

1992년에 발굴된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淳昌城隍大神事跡懸板)[중요 민속 문화재 제238호]은 우리나라 성황 신앙의 변천사를 밝힐 수 있는 최고의 성황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와 세시 풍속 및 성황 문화를 복원하는 데 있어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된다.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중단되기까지 순창의 성황제는 650년간 성황신을 모신 전통문화였다. 조선 후기 시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순창은 많은 물자를 들여 성황사(城隍祠)를 짓고, 단옷날이 되면 장엄하고 신명 나는 성황제를 통해 공동체의 화합과 주민 의식을 고양시켜 왔다.

[편찬/간행 경위]

민속 행사는 지역 주민의 화합과 전통을 이어 가는 문화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 축제 등의 민속 행사를 못 하게 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순창군의 성황당 역시 소멸되었다. 기록을 보면 고려 시대 충렬왕(忠烈王) 때부터 순창 지역에 사당을 지어 수호신으로 섬겼고, 성황제를 조선 시대 후기까지 거행하였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현판 자료인 순창 성황 대신 사적 현판의 발견을 계기로 일제에 의해 맥이 끊긴 성황제의 원형을 복원시키고자 1996년에 순창 문화원과 한국 종교사 연구회가 학술 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였고, 그 결과 순창군의 성황사를 올바르게 규명하고 학술적으로 정리하고자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 자료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저자로 한국 종교사 연구회 회장 윤이흠과 양정욱, 남풍현, 정충락, 김갑동, 김기덕, 박호원, 이해준, 정승모, 이기태, 신종원, 송화섭, 장정룡, 서영대가 참여하였으며, 1998년 12월 30일에 순창군과 순창 문화원이 간행하였다.

[형태]

판형은 신국판이고, 양장본에 면수는 504쪽이다. 표제는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淳昌城隍大神事跡記硏究)’이다.

[구성/내용]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는 성황당 현판을 해석하고, 고려 시대 순창 지역의 성황 신앙으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역사적 맥락을 분석하였다. 또한 순창 성황 신앙의 특징과 강릉 성황제 비교 고찰 등 짜임새 있게 분석한 연구자들의 개별 논문이 실려 있다.

우선 화보에는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 사진과 순창군의 옛 지도가 실려 있다. 순창 성황대신 사적 원문과 서문에 이어 주요 구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정욱은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의 발견과 의의」를, 남풍현은 「순창 성황당 현판의 판독과 해석」을 썼다.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의 서 형태(書形態)와 각자 편에서 정충락과 김갑동은 「고려 시대 순창의 성황 신앙과 그 의미」를, 김기덕은 「고려 시대 성황신에 대한 봉작(封爵)과 순창의 성황대신적 현판의 분석」을 썼다. 「조선 성황제의 축전화와 민속화」는 박호원이 기술하였으며, 이해준은 「순창 성황제의 변천과 주도 세력」을 썼다.

「조선 중기 전라도 순창군 성황제의 성격」은 정승모가, 「지역 사회 이념의 통합과 성황사」는 이기태가 저술하였으며, 「성황 대신 사적기와 대왕 신앙」은 신종원, 「성황대신 사적기를 통해서 본 순창의 성황제」는 송화섭이 맡아 기술하였다.

장정령은 「순창과 성황제의 비교 고찰」을, 마지막으로 서영대는 「성황 신앙사에서 본 순창 성황대신적」을 기술하였다. 부록에는 영월 성황사 개정 전말 해석과 상주 만산동 성황사 관련 자료, 그리고 성황 연구 논저 목록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성황은 우리 민족 공동체 신앙과 축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자료가 없어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으니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의 발견은 당시 성황제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현판 기문은 우리나라 성황 신앙사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순창 성황대신 사적기 연구』성황사 연구에 큰 획을 그은 중요한 작업이고, 한국 종교사에서도 연구 자료로서 큰 가치가 있다. 자료가 가지는 중요성과 향토 문화의 계발 필요성, 문화적 각성 등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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