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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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 있던 기생 교육 기관.
[기능과 역할]
교방(敎坊)은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의 좌방(左坊)과 우방(右坊)을 아울러 이르던 말로 사용되었다. 좌방은 아악(雅樂)을, 우방은 속악(俗樂)을 맡아보았다. 이러한 교방은 서울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도 존재하였다. 교방에서는 가무(歌舞)를 담당하였으므로 이들에게 악기와 가무에 대한 교습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관련 기록]
전라북도에는 전주, 무주, 순창에 교방이 있었다 한다. 『호남 읍지(湖南邑誌)』에 교방 설치 여부가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남원 지역에 기생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순창에 교방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순창 군지』에는 순창군에 있는 공서(公署)의 명칭과 소속 인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곳에 교방이 있으며, 소속 노비로 주탕비(酒湯婢) 32명, 수급비(水汲婢) 38명, 상의원(尙衣院)에 침선비(針線婢) 4명, 악공(樂工) 2명이 있었다고 한다. 노비들을 기록한 천안(賤案)에도 주탕비(酒湯婢) 27명, 급수비(汲水婢) 19명, 악공 관노(樂工官奴) 2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기생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교방이 있었고 소속된 인원이 있었으며 악공 등이 존재한 것을 미루어볼 때, 순창에 교방이 설립되었고 가무에 관한 교습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