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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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尙溶 |
이칭/별칭 | 명포(明浦),칠휴당(七休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77년 - 신상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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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8년 - 신상용 정려 건립 |
몰년 시기/일시 | 1618년 - 신상용 사망 |
출생지 | 신상용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거주|이주지 | 신상용 피난지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부리 |
정려 | 효자 장사랑 신상용 지려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정려 | 효자 증 장령 신상용 지려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
정려 | 신상용 정려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부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고령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堂).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신흡이다.
[활동 사항]
신상용(申尙溶)[1577~1618]은 1577년(선조 10)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에서 출생하였으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고 은거하여 성현의 책을 읽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평생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병든 아버지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여 한겨울에 얼어붙은 강가에 나가 얼음을 깨서 잉어를 구하였다. 또 생대추를 먹고 싶어 하는데 엄동설한이라 구할 길이 없어 나무 아래서 슬피 울자 눈 덮인 가지에 꽃이 피면서 푸른 대추가 열렸다. 부친상을 당하여 운상(運喪)을 할 때 장마가 져서 적호강(赤湖江)[지금의 적성강]의 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게 되자, 신상용이 슬피 우니 강물이 잠시 멈춰 무사히 운상할 수 있었다. 삼년상을 치르면서 죽을 먹고,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실명하였다. 이후 깊은 병에 걸려 5년 동안 여러 번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곤 하다가 1618년(광해군 10)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선조(宣祖)가 신상용의 효행을 듣고 생존해 있던 1608년(선조 41) 정려를 내리고 『삼강록(三綱錄)』의 효자도에 들게 하였다. 통훈대부 사헌부 장령 행장사랑에 추증되었다. 1875년(고종 12) 정려를 중건하였고, 1999년 4월에 다시 정려를 중수하였다. 신상용의 정려는 신상용이 살았던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와 유등면 유촌리, 또 잠시 피난 갔던 진주 덕산동[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부리]의 세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