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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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義孝 |
이칭/별칭 | 백원(百源),독처당(獨處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92년 - 조의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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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653년 - 조의효 정려 건립 |
출생지 | 조의효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
정려 | 효자 학생 조의효지려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산12-4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옥천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독처당(獨處堂).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응견(趙應堅)이고, 아버지는 조헌을 따라 순절한 조여관(趙汝寬)이다.
[활동 사항]
조의효(趙義孝)[1592~?]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절사 조여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3세 때에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였음을 들었다. 9세에 순창군 적성면 임동[지금의 순창군 적성면 운림리] 동정산에서 순절한 아버지를 위하여 초혼장(招魂葬)을 올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15세에 이르러 아버지의 추상례(追喪禮)를 지내고 하늘의 해를 보지 않고 3년 거상(居喪)을 행하였다. 큰아버지가 자식이 없자 큰아버지의 집으로 양자를 가서 어버이에게 못했던 효를 다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의효의 효행을 알게 된 순창의 유림들이 여러 차례 임금에게 글을 올려 정려를 내려줄 것을 청하였다. 1653년(효종 4)에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에 효자 학생 조의효지려(孝子學生趙義孝之閭)를 세웠다. 숙종은 사헌부 지평을 추증하고 효자각을 짓도록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