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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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川趙氏烈女碑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191[교성 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건립 시기/일시 | 1868년 - 옥천 조씨 열녀 비각 정려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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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886년 - 옥천 조씨 열녀 비각 정려각 건립 |
현 소재지 | 옥천 조씨 열녀 비각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191[교성 마을] |
성격 | 열녀 비각 |
양식 | 맞배지붕 기와집[정려각]|좌대와 개석을 갖춤[정려비]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에 있는 이현구 처 옥천 조씨의 열행을 기리는 개항기에 세운 정려비와 비각.
[개설]
옥천 조씨(玉川趙氏)는 옥천 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의 후손이다. 남편 이현구(李炫龜)가 고질병이 있어 백방으로 조치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늘이 내린 명이 이뿐인가 하고는 집안사람들에게 울면서 말하기를 “아들 생산도 못해 받들고 의탁할 곳이 없으니 굳이 연명할 수 없다”라며 삼년상을 치른 뒤 자결하였다.
[위치]
옥천 조씨 열녀 비각(玉川趙氏烈女碑閣)은 순창 읍내에서 옥천교를 건너 담양 방향으로 약 300m 가다가, 우측 목재소 옆길을 따라가다 좌회전하여 논길을 가면 들 가운데에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순창읍 교성리 191번지[교성 마을]이다.
[변천]
비의 음기(陰記)에 의하면 1868년(고종 5) 4월 관청과 향리들이 서로 의논하여 세웠고, 정려각은 박봉전이 찬한 편액을 보면 1886년에 건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형태]
정려각은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풍판(風板)을 달았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정려각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색하였으며, 중앙에는 좌대(座臺)와 개석(蓋石)을 갖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전면에 ‘열부 고 한량 이현구 지처 옥천 조씨 지비(烈婦故閑良李炫龜之妻玉川趙氏之碑)’라고 적혀 있다. 정려각 안에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1886년 8월 밀양 후인 박봉전이 기록한 것이다.
[현황]
예전에는 주변에 토담을 둘렀는데, 지금은 콘크리트 담장이 있다. 정려각 앞에는 ‘옥천 조씨 열녀 비각’ 표지판이 있다. 현재는 정려각 지붕이 헐고 단청이 퇴색되어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옥천 조씨 열녀 비각은 순창 향교가 있는 순창읍 교성리 교성 마을에 있으며, 마을의 미풍양속을 교화하는 데 큰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