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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45
한자 合米城
이칭/별칭 합미산성,신흥리 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산51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5년 2월 5일연표보기 - 합미성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합미성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합미성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산51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석성|포곡식
크기(높이,길이,둘레) 약 484m[둘레]|196m[동서 길이]|약 75m[남북 너비]
소유자 순창군
관리자 순창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석성.

[건립 경위]

지역 주민들은 합미성(合米城)할미성, 합민성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할미성 또는 합미성, 합민성은 고성(古城)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의 합미산성과 남원시 인월면 합민성·이백면 할미성 등과 같이 주로 삼국 시대에 축조된 산성들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합미성 역시 백제 시대에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학술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조선 시대에 성을 보수하여 병사들의 군량미를 저장하였기 때문에 합미성이라고 한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어서, 조선 시대에도 산성이 경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합미성의 남서쪽 1㎞ 지점에는 해발 360.6m의 자라봉이 있으며, 동쪽과 남쪽 2㎞ 지점에는 오수천이 흐르고 있다. 오수천순창군 동계면의 동부와 서부를 가르면서 남으로 흐른다. 산성의 주변 지형은 해발 300~600m의 산과 그 사이의 작은 분지형 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사방으로 교통로가 펼쳐진 곳이다. 따라서 합미성은 남쪽에서 오수천 유역을 따라 오르는 통로를 방어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합미성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신흥 마을 뒷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순창군 동계면 소재지에서 임실군 오수면 방면의 국도 1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 보면 신흥리 장동 삼거리에 이른다. 장동 삼거리에서 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장동 마을 쪽인 서쪽으로 직진하여 600여m 가면 산 아래에 밤나무 단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 합미성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안내판에서 북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250m 정도 오르면 산 정상부에 이르게 되며, 두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막아 축조한 남쪽 성벽이 보인다.

[형태]

합미성순창군 동계면 신흥리 자라봉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해발 274.5m의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산의 정상부에는 두 개의 봉우리[해발 274.5m, 263.5m]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솟아 있는데, 합미성은 이 두 봉우리와 남쪽 계곡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의 석성이다. 기존의 보고에는 테뫼식으로 구분되었으나, 두 개 이상의 봉우리와 계곡이 포함된 포곡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으로 북벽은 두 봉우리의 능선 상에 축조되었으며, 남벽은 두 봉우리에서 약간 내려온 산줄기를 가로막아 축조하였다. 따라서 남벽 안쪽에는 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수구(水口)도 확인되고 있다. 북벽은 능선을 통과하고 있는데 대부분 성벽이 무너져 있다. 서벽은 높이 약 3m가 남아 있으며, 성벽 상단에는 너비 3m의 회랑도(回廊道)가 있다. 한편 산성의 북동 모서리 쪽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이 이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곳은 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장대와 같은 방형의 토단이 있다. 합미성의 동서 길이는 196m, 남북 너비는 약 75m이며, 전체 둘레는 약 484m이다. 성문은 서문 터, 동문 터, 북문 터 등이 있으며, 내성과 외성 사이에도 성문이 남아 있다.

[현황]

합미성은 1975년 2월 5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합미성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으나 성벽의 통과선이 관찰된다. 성벽 중 서벽의 경우는 높이 3m 정도가 남아 있다. 성문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등산로로 이용되는 곳으로 무너진 석재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최근 남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보존되고 있다. 합미성 내부는 수풀이 우거져 있고 낙엽 등이 쌓여 있어 유물의 채집이 어렵다.

[의의와 평가]

합미성은 삼국 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문화재자료로서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밀 조사를 통해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군량미를 저장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성벽의 개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합미성의 지정학적 위치는 오수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고대에는 수로가 지금의 고속 도로처럼 중요한 교통로의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합미성은 교통로의 확보 및 교통로의 감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역화의 안정과 확장에 기반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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