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085 |
---|---|
한자 | 兄弟窟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화섭 |
전구간 | 형제굴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
해당 지역 소재지 | 형제굴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성격 | 동굴 |
길이 | 약 2m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에 있는 두 개의 굴.
[명칭 유래]
형제굴의 유래는 조선 시대 정유재란 시기로 올라간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이 남원성을 함락하고 전주로 향하기에 앞서 비홍재를 넘어 순창을 치게 하였다. 왜군들이 순창을 공격해 온다는 소식에 순창 고을 사람들은 집을 비우고 피난길에 나서면서 집집마다 불을 질렀는데 그 불길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고 한다. 팔덕면 강천산 아래 사정벌에서 의병과 왜군의 접전이 벌어졌는데, 이때 의병 대장의 두 아들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혈전을 벌이던 의병장에게는 7대 독자를 이을 어린 형제가 있었다. 출전하기 전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7대를 독신으로 내려오며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는데 대가 끊기겠다며 안타까워하였다. 하여 내일 새벽에 두 아들을 강천산으로 보내 강천산 계곡 물줄기를 타고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두 개의 굴이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안전하게 피신시키라고 하였다.
의병 대장은 산신령이 암시해 준 대로 하인을 시켜 두 아들을 강천산으로 보냈다. 하인은 두 아들을 두 굴에 각각 거주시키고 열흘 간격으로 꼬박꼬박 밥을 날라다 주었다. 그로부터 몇 달간 밥을 날라다 주던 하인이 주인인 의병 대장이 사정벌 전투에서 전사한 것을 알고 태만해지면서 강천산 주막집 주모와 놀아나 두 아들에게 밥을 갖다 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배고픔에 지친 두 아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계곡이 잘 보이는 산마루에 올라 하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러다가 비바람이 불고 강추위가 엄습해 오자 두 아들은 딱딱한 바위로 변해버렸다. 이후 이 바위를 형제암이라 부르고 두 형제가 은신해 있던 굴을 형제굴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
강천산 현수교 밑을 지나 계곡을 따라 약 700m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왕자봉 하단에 형제암이 암벽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형제암에서 오른쪽으로 원등을 향해 가다 보면 강천 제2보라 할 수 있는 저수지 콘크리트 둑이 나오는데, 그 오른쪽 암벽에 형제굴이 위치하고 있다.
[현황]
최근 강천산 제2호 저수지를 조성하면서 형제암의 암벽을 깎아내어 형제굴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왕자봉 하단의 자연 암벽을 훼손하여 저수지의 제방을 쌓는데 석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형제굴은 길이가 2m도 채 안 되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