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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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文益 |
영어공식명칭 | Hwang Moon-ik |
이칭/별칭 | 황문익(黃文翊),황영주(黃永周),국사(菊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12월 9일 - 황문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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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1월 - 황문익 군자금 모금 목적으로 국내 잠입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12월 26일 - 황문익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53년 5월 8일 - 황문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황문익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황문익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대항리 -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대항리 700 |
거주|이주지 | 봉황성 - 중국 펑텐성 둥벤다오 펑황현 펑황성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황문익(黃文益)[1879~1953]의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호는 국사(菊史)이며, 황문익(黃文翊), 황영주(黃永周)로도 불렸다. 황문익은 1879년 12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에서 아버지 황정현(黃庭顯)과 어머니 이씨(李氏)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전기 호군(護軍)을 지낸 황학(黃鶴)의 14대손이다. 파리장서운동(巴里張書運動)에 참여한 노상직(盧相稷)은 황문익의 작은 고모부이다.
[활동 사항]
황문익은 1907년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출신 손경헌(孫庚憲)이 주도하여 조직한 대한협회(大韓協會) 밀양군지부에 가입하였다. 1910년 조선이 일제에 강제 병합되자 황문익은 1913년 4월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하였고, 펑텐성[奉天省] 둥벤다오[東邊道] 펑황현[鳳凰縣] 펑황성[鳳凰城]에 정착하였다. 황문익은 1919년 지린성[吉林省] 군정서(軍政署) 부속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였으며, 펑텐성 둥벤다오 푸숭현[撫松縣]에 있는 백산학교(白山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황문익은 1920년 11월 흥업단 단장 김호(金虎)와 외교부장 김성규(金星奎)로부터 군관 양성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에 손경헌, 이만준(李萬俊), 김인제(金仁濟), 최성기(崔聖基)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후 경상도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노출되면서 황문익은 1922년 12월 26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3년 봄 대구지방법원에서 「다이쇼[大正] 8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상해 혐의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황문익은 1953년 5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황문익은 1983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