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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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備邊司湖南地圖鎭安龍潭縣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한상호 |
[정의]
조선 후기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개설]
『비변사 호남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한 호남 지방의 지도책 중 지금의 진안군에 해당하는 진안현과 용담현 지도이다. 이 지도는 1739년(영조 15)에서 1750년(영조 26)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채색 필사본이며 총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부터 6책까지는 제주(濟州)·대정(大靜)·정의(旌義) 3개를 제외한 53개의 고을이, 7책에는 전라도 전도와 전라좌도 지도·전라우도 지도 등 3개가 수록되어 있다.
비변사 지도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경기도, 해서 전도 및 관서 전도, 관동 전도 및 북관 전도, 서북 피아 양계 전도, 영남 전도, 호서 전도, 호남 전도, 대동 총도가 차례로 1책으로 묶여 있다. 이 지도들은 대부분 도지도, 도별 군현 지도, 도내 군사적 요충지의 지도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또한 이 지도집에는 세계 지도[천하도], 중국·일본 등의 외국 지도, 북경 궁궐도, 관방 지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이 지도책은 민간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된 관찬 군현 지도집임을 알 수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지리 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비변사에서는 국가 사업으로 전국 각지의 대축척 지도 제작에 착수한다. 이에 앞서 1706년 우리나라 북방과 만리장성을 포함한 중국 동북 지방 군사 요새를 상세히 그린 「요계관방도」 제작이 그 시초를 이루었고, 비변사에서는 그동안 축적한 정보를 통해 전국 지도 제작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이용되는 지도는 홍문관·규장각·비변사 등에서 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에서 홍문관이나 규장각은 학술 기관이지만 비변사는 일종의 상설 국가 안보 회의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기관으로 국방은 물론 주요 국정 현안을 종합적으로 처리했다.
기관 성격이 다른 만큼 지도의 용도도 달랐다. 홍문관이나 규장각에서 만든 지도가 지방 통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비변사에서 제작한 지도는 기본적으로 군용 지도가 많았다. 18세기 비변사에서 만든 「비변사인 방안 지도」는 전국을 5만분의 1 내지 8만분의 1의 축척으로 그려낸 초대형 지도책이다. 일명 ‘비변사 지도’라고도 부르는 이 지도는 거의 1m 크기의 지도 수백 장으로 구성된 지도책이다. 비변사 지도 중 경상도의 지도는 각각 세로 106~108㎝, 가로 83~89㎝ 크기의 총 71개 지도로 구성되고 다른 도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편 이 시기 정상기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신경준의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등 지도 제작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졌고, 1861년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간행되기에 이른다.
[형태/서지]
『비변사 호남지도』의 크기는 세로 36.6㎝, 가로 22.6㎝ 정도이다. 1책부터 6책까지는 제주(濟州)·대정(大靜)·정의(旌義) 3개를 제외한 53개의 고을이, 7책에는 전라도 전도와 전라 좌도·전라 우도 등 3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크기는 1~6책의 경우 세로 103㎝, 가로 80㎝, 7책의 경우 전라도 전도는 세로 131㎝, 가로 117㎝이고 좌·우도는 세로 131㎝, 가로 105㎝ 정도 되는데 표지의 크기에 맞추어 접어서 묶어 편찬했다. 1책의 나주, 3책의 무주부, 6책의 광주, 7책의 전라도 전도 뒷면에 비변사 도장이 찍혀 있다.
[구성/내용]
18세기 중반 전라도 진안현과 용담현 일대의 모습을 그린 방안식 채색 필사본 군현지도 이다. 읍치를 중심으로 산(山) 천(川) 관공서(官公署) 등의 모습을 담고 있고 지도 상단에는 토지, 호구, 군정, 산천, 역참, 기타 시설, 면별 정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진안현은 지금의 진안군 진안읍·상전면·부귀면·마령면·성수면·백운면에 해당하고 읍치는 진안읍 군상리 일대에 있었다. 백두대간과 금남 정맥 사이의 고지대에 위치한 산간 고을로 북쪽은 금강 수계, 남쪽은 섬진강 수계에 해당한다. 고을의 진산은 북쪽의 부귀산(富貴山)으로 읍치의 산세가 이곳에서 갈라지고 있다. 읍치에는 관아 건물뿐만 아니라 대동고(大同庫), 진휼청(賑恤廳) 등의 고을 재정과 관련된 시설물도 그려져 있다. 고을 남쪽에는 마이산이 그려져 있고, 마령면(馬靈面)에는 원래 마령현이 있었던 곳이다. 남서쪽에는 백운동(白雲洞) 계곡도 표시되어 있다. 지도 중앙에 용담현 치소 건물이 그려져 있고 산과 하천의 흐름을 주로 표기하고 있다. 1699년 편찬된 『진안 군지』에는 2역(驛) 15원(院)이던 것을 1역 5원만 남겨 두고 폐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5원은 율현원·초천원·영천원·가정원·백암원 등이다. 이 지도에는 백암원(白岩院)과 험천원(險川院) 2개의 원과 역(驛)이 표기되어 있어 이후 1700년대 진안의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용담현은 지금의 진안군 용담면·주천면·동향면·안천면·정천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용담면 옥거리에 있었다. 고을의 진산은 용강산(龍岡山)으로 북에서 내려오는 맥이 뚜렷하고 고을의 남이면 황산 마을 앞에는 금강이 주자천과 합수하여 삼천(三川)을 이루고 있는데 그곳은 예전에 이름이 마산담(馬山潭)으로서 용담(龍潭)이라고도 불렸다. 읍치 서남쪽의 주화산은 계룡산까지 이어지고, 서면의 주자천에는 와룡암(臥龍岩)과 반일암(半日岩)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중앙에 용담현 치소 건물이 그려져 있고 산과 하천의 흐름을 주로 표기하고 있고, 상단에 건치 연혁·호구·군정, 그리고 각 면의 거리 등을 기록하고 있다. 1752년(영조 28)에 현령 홍석이 주자천 변의 언덕 위에 지은 태고정(太古亭)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앞 시기에 제작된 지도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비변사 지도는 경위도 개념인 방안[모눈]이 표시되어 있어 지리적 위치를 보다 정확히 표기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고 진안현과 용담현의 산천과 치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특히 진안현과 용담현의 자연 지리 정보는 물론 인문 지리 정보를 상세히 수록하고 있어 행정·군사면에서 활용되었음을 알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