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525
한자 和睦場-三一獨立萬歲運動
이칭/별칭 화목장터 3.1운동,화목장터 만세운동,화목장터 만세시위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03월 26일연표보기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시작
종결 시기/일시 1919년 03월 27일연표보기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종결
전개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27일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전개
발생|시작 장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지도보기
성격 만세운동
관련 인물/단체 신태휴|조병국|조현욱

[정의]

1919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개설]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화목장터에서 1919년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비록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청송 지역 3.1운동을 대표할 만큼 규모가 컸고 격렬하였다.

[역사적 배경]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의 주도층 인사들은 만국평화회의의 결론인 민족자결주의의 국제 사조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독립만세운동을 우리 민족이 독립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라고 여기고,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다시 말하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의 배경은 민족자결주의의 국제 사조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3.1운동의 소식 등이었다.

[경과]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1919년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에 걸쳐 두 차례나 일어났다. 3월 26일 만세운동은 현서면 수락동의 조현욱(趙炫郁)이 주도하여 일어났다. 조현욱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만세운동의 소식을 듣고, 이때가 대한제국이 독립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신태휴(申泰烋) 등과 연락하며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3월 26일 동민들과 함께 오후 1시경 화목장터에 도착하여 장터에 모인 군중들 수백 명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당황한 면장과 주재소의 순사들이 달려와 총검으로 시위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튿날 3월 27일 다시 복동의 조병국(趙柄國)이 동민을 모아 태극기를 흔들면서 화목장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 군중들이 계속 모여들어 장터에 이르렀을 때는 약 600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질서 있게 평화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으나 출동한 일본 경찰들이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을 명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이 만세운동을 더욱 격렬하게 펼치자 당황한 일본 경찰들은 총격을 가하면서 해산시켰다.

[결과]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청송경찰서와 현서주재소 경찰들에 의해 해산되었다. 시위대는 질서 있게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 순사들은 총검으로 이를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3월 26일에는 지도자 조현욱신태휴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경찰서로 잡혀갔으며, 3월 27일에는 일본 순사들의 총격으로 4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지도자 조병국을 비롯하여 수십 명이 경찰서로 잡혀갔다. 이 가운데서 구속되었다가 징역형을 받고 투옥된 사람은 조현욱, 신태휴, 조병국, 이형, 김기수 등 5명이었다. 이들 형량은 김기수가 징역 8월이었고 그 외 4명은 징역 2년의 중형이었다.

[의의와 평가]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은 민족자결주의의 국제 사조와 3.1운동의 전국적 확산 및 인근지역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그리고 청송 지역 3.1운동으로 형을 받아 투옥된 사람은 모두 6명이었는데, 그중 5명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었다. 이 사실은 청송 지역 3.1운동 중에서도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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