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85
한자 栢子里殉敎址
영어공식명칭 MartyrdomSite of Baekja-ri
이칭/별칭 모래실 순교지,핏골
분야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산9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815년 - 백자리 순교지 을해박해로 순교지 형성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산98 일대지도보기
성격 순교지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백자리에 있는 조선시대 천주교 순교지.

[개설]

백자리 순교지는 신유박해 때 다른 지역 신자들이 피난해 와서 정착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초기 천주교 신자의 순교 유적지 중 하나이다. 모래실 순교지라고도 한다.

[건립 경위]

백자리 순교지가 있는 모래실은 원래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서울과 충청도에서 많은 신자가 피난을 와서 신자들끼리 살던 교우촌이었다. 모래실이란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래가 많아 모래실이란 설이고, 다른 하나는 몰래 예배를 드리던 ‘밀실(密室)’이라는 뜻에서 몰래실이라 불렸다가 음이 변하여 모래실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순교의 경위는 1814년 심한 기근에서 비롯되었다. 그 해에는 추수한 곡식들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떨어지자 나라 전체가 굶주리게 되었다. 이때 경상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던 전지수라는 인물이 모래실에서 구걸을 하다 앙심을 품고 신자들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관가에 밀고하였다. 부활절 날에 포졸들이 민가를 습격하여 신자들을 포박하였는데, 이것이 을해박해의 시작이었다.

신자 중에는 그 마을에서 바로 죽은 이도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체포되어 안동·경주·대구 감옥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많은 신자가 죽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에는 ‘핏골’[지금의 경북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 일대]이라는 지명도 생기게 되었다.

[위치]

백자리 순교지청송군 현서면 백자리 모래실 마을에서 동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백자리 순교터 자리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 1975년에 로마교황청에서 이곳에 금십자가를 찾기 위하여 청송군에 의뢰함으로써 성지 조성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였지만,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의의와 평가]

천주교 역사에 있어 백자리 순교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신유박해를 피난해 온 신자들로 인해 경상도 지역에서도 천주교가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문화유산나들이(http://gis-heritage.go.kr/maps/nadri/nadriMain.do)
  • 가톨릭인터넷 goodnews(http://www.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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