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근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84
한자 閔根孝
영어공식명칭 Min Geunhyo
이칭/별칭 순원(順源),구벽재(扣璧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0년연표보기 - 민근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0년 - 민근효 생원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630년연표보기 - 민근효 사망
출생지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여흥
대표 관직 생원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개설]

민근효(閔根孝)[1550~1630]는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품계는 통정대부에 올랐다. 진사시에 합격한 후 임진왜란 이후 향교를 중건하는 데 앞장서고, 훈도와 향수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서 당대의 명유들과 함께 어울렸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순원(順源), 호는 구벽재(扣璧齋). 고조할아버지 남은(南隱) 민흥(閔興)이 처음 청송 안덕에 정착한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해 왔다. 고조할머니는 의인(宜人) 경주손씨(慶州孫氏)로 손사성(孫士晟)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 민세경(閔世卿)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 행사정(行司正)을 지냈으며, 할아버지는 민상(閔祥)이다. 아버지는 청송 지역 문풍(文風)을 진작시킨 명지재(明智齋) 민추(閔樞)이다.

[활동 사항]

민근효는 1570년(선조 3)에 생원시 1등 3위에 합격하였다. 형 민종효 역시 같은 해 2등 8위로 입격하였다. 재기(材器)가 뛰어나고 문장을 정밀하게 하는 데 힘썼고 가훈을 이어받아 명성과 덕망이 있었으며 필법이 뛰어났다. 이후 청송에서 아버지 민추를 도와서 후진 양성에 힘쓰니, 당시 민근효의 문하에서 청송 지역을 대표하는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1604년(선조 37) 청송부사 이영도(李泳道)가 부임하자, 청송향교 훈도로 추대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향교 대성전과 동서재를 다시 세웠다. 장현광(張顯光), 최현(崔晛), 권극립(權克立), 정사진(鄭四震)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저술]

대암(大庵) 박성(朴惺) 문인으로 문장이 정밀하고 필법이 뛰어났다. 당시 명유인 장현광 등과 더불어 지내었던 『동유록(同遊錄)』이 있으며, 유고(遺稿)가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수직(壽職)으로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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