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천리 밀양박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13
한자 魚川里密陽朴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가구수 35가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에 세거하고 있는 밀양박씨 돈와공파 집성촌.

[개설]

어천리 밀양박씨 집성촌파천면 어천리에 있는 밀양박씨 세거지이다. 밀양박씨는 경상남도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며, 후손들은 밀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밀양박씨 돈와공파(遯窩公派)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의 한 지파로, 숙민공파(肅愍公派)의 파조(派組)인 숙민공 박승종(朴承宗)의 장자이자 광해군의 사돈인 기백공파(機伯公派) 파조 기백공 박자흥(朴自興)의 아들 돈와(遯窩) 박유도(朴維度)를 파조로 한다.

[명칭 유래]

어천(魚川)의 옛 이름인 예내는 토지가 비옥하고 큰 강을 끼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명칭인 어천은 강이 깊고 맑아 물고기가 많다고 하여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사돈이었던 박자흥과 그의 부친인 박승종은 반정에 대항하여 군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이에 실패하여 자결하였다. 박자흥의 아들 돈와 박유도는 지금의 파천면 신기리 감곡으로 은거하였다. 감곡에 은거하였던 박유도는 아들 박만기(朴萬基)와 함께 어천으로 이거하여, 그 후손들이 어천리에 세거하고 있다. 어천리밀양박씨 가구수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54가구였고 1992년에도 55가구로 파악되었으나, 현재는 35가구 정도로 감소하였다.

[자연환경]

어천리의 동쪽에는 두루봉, 남쪽에는 왕녀봉이 높이 솟아 있고, 어천리를 가로지르는 용전천어천리와 안동시 임동면 지리 사이에서 반변천으로 합류한다. 어천마을은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백전동과 사호동을 합쳐 어천리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안동시 임하댐 건설로 어천리 일부가 수몰되어 현재 어천과 해남, 백전 세 개의 자연마을이 남아 있다.

[현황]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어천리의 2017년 현재 가구 수는 약 40가구이며, 그중 밀양박씨는 35가구이다. 과거 마을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80가구 정도가 거주하였고, 두 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밀양박씨였다고 한다. 밀양박씨 돈와공파 종가가 있는 어천리에서는 매년 10월에 문중이 모여 입향조 박유도의 제를 지낸다. 어천리에는 입향조 박유도 묘소 외에도 한매정(漢梅亭) 등 밀양박씨 돈와공파 관련 유적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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