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612
한자 明堂里驪興閔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당밑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당밑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여흥민씨 문도공파 집성촌.

[개설]

명당리 여흥민씨(驪興閔氏) 집성촌명당리 당밑마을에 있는 여흥민씨 문도공파(文度公派) 세거지이다. 여흥민씨는 경기도 여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고려시대 동중서시랑평장사(同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민영모(閔令謨)의 증조할아버지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여흥민씨는 조선시대 네 명의 왕후를 배출하며 세도가문으로서 위세를 떨쳤다. 청송군의 여흥민씨 입향조는 태종 이방원의 아내인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의 둘째 남동생인 민무질(閔無疾)의 손자 남은(南隱) 민흥(閔興)이다. 민흥은 숙청을 피하기 위해 처가의 도움을 받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 은거하였다.

[명칭 유래]

당밑마을은 당나무가 있는 산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경상북도 청송군의 여흥민씨 입향조 민흥손사성(孫士晟)의 도움을 받아 숙청을 피하고, 손사성의 딸과 혼인하여 안덕면에 정착하였다. 민흥은 후손들에게 늘 권력을 경계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이에 따라 그의 후손들은 벼슬길보다 학문에 증진하였다.

[자연환경]

당밑마을 동쪽으로는 장전리, 동북으로는 신성리, 서쪽으로는 구실재를 사이로 하여 감은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은 복리, 북쪽은 밤골재를 넘어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와 통한다. 명당교를 건너 노하길과 안헌로가 교차하는 골짜기 사이에 마을이 있으며, 마을 남쪽에는 동서로 길안천이 흐른다. 마을 뒤편의 산은 ‘산지붕’이라고 한다.

[현황]

2017년 현재 명당3리 당밑마을은 약 5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여흥민씨가 35가구였고, 1992년에는 38가구였으나, 각성촌락화 되어 여흥민씨는 몇 가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음력 10월에는 묘사(墓祀)를 지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당밑마을을 방문한다.

당밑마을에 있는 명지재(明智齋)민추(閔樞)가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것으로, 1922년에 당밑마을로 이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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