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583
한자 靑松沈氏
영어공식명칭 CheongsongSim Clan|CheongsongSimssi
이칭/별칭 청부심씨(靑鳧沈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경상북도 청송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감연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묘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 산33 지도보기
성씨 시조 심홍부(沈洪孚)

[정의]

심홍부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송군의 세거 성씨.

[개설]

청송심씨(靑松沈氏)는 고려시대부터 청송 지역의 호족이며 토성 성씨(土姓姓氏)로 존재하였다.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부남면 감연리·대전리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청송심씨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받든다. 심홍부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냈다. 심홍부의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우왕(禑王)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러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청성군충의백(靑城郡忠義伯)에 진봉된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청송심씨 문중에서는 조선시대 많은 재상과 공신 그리고 세 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심온(沈溫)은 형조·호조 판서와 한성부판윤, 의정부참찬, 좌군도총제를 역임하고 이조판서가 되었다. 심온의 장녀는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왕후의 자리가 위태로웠으나, 세종에 대한 내조의 공을 인정받아 위기를 극복하였다.

[입향 경위]

청송심씨는 청송의 토성 성씨로 원래 청송의 옛 지명인 청부심씨(靑鳧沈氏)였으나, 15세기 초 군현 통합에 의하여 청송심씨로 변경되었으며, 고려 말에 토족으로 성장하였다. 청송심씨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 ‘기선청부현사(其先靑鳧縣史)’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연조귀감(掾曹龜鑑)』에 청송 호장(戶長)으로 심전(沈滇)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청송심씨가 호장직을 세습해 왔으며 고려 말 이전부터 청송에 입향하여 세거하였음을 말해 준다.

[현황]

청송군 청송심씨의 주요 집성촌으로는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약 62가구], 부남면 감연리 감연마을[약 30가구], 부남면 대전리 나실마을[약 14가구] 등이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는 청송심씨는 24만 768명이며, 청송군의 청송심씨는 626명으로 나타났다.

[관련 유적]

청송심씨 관련 청송 지역 유적은 청송읍 덕리에 보물 제1840호인 보광사 극락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9호인 청송 만세루(萬歲樓), 그리고 벽절정(碧節亭)이 있다. 청송읍 월막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인 찬경루(讚慶樓)가 있다. 파천면 덕천리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50호인 청송 송소 고택(靑松松韶古宅), 등록문화재 제497호인 청송 소류정(靑松小流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1호인 청송 초전댁, 그리고 요동재사(堯洞齎舍), 청송심씨 찰방공파종택(察訪公派宗宅)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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