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지방지도』 「청송도호부·진보현 지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540
한자 1872年地方地圖靑松都護府眞寶縣地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용도 지방의 실정 파악, 외세의 군사적인 압박으로 인해 대응할 군사력 필요

[정의]

1872년에 편찬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청송도호부진보현의 지도.

[개설]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이 개혁을 추진함과 동시에 외세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여 1872년(고종 9)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각지의 지도를 제작해 올리게 하여 제작한 것이다. 이 지도는 관찬 사업으로 진행된 전국 차원의 군현지도로서 총 459장의 방대한 분량이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각 지방의 주요 산천과 하천의 연결 관계를 표시하여 산하의 맥과 흐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으로 인해 지도의 전체적인 통일성이 부족하고 체계적으로 제작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전의 지도들보다는 큰 규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도에 들어 있는 정보나 내용면으로는 한 시기에 수합된 지도로는 가장 많은 양이다. 또한 군사적인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營)과 진보(鎭堡), 성곽(城郭), 역(驛), 파발(擺撥)까지 표기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9세기 후반 조선의 상황은 세도정치의 영향으로 인해 삼정(三政)의 문란과 매관매직(賣官賣職), 각종 비리로 인해 민생이 도탄으로 빠져 국가의 재정 수입이 줄어들고 운영이 원활히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밖으로는 서양의 세력이 출현하여 조선의 개항을 요구해 오면서 물리적인 충돌도 일어나 당시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큰 혼란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1863년 고종이 즉위하자 친부(親父)였던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고 각종 제도 개혁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특히 지방관리의 부정부패로 인해 이반된 민심을 모으기 위해서 각 지방의 실정을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또한 이양선의 잦은 출몰과 함께 외세의 군사적인 압박으로 인해 이에 대응할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 차원에서 지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특히 1871년(고종 8) 미국이 일으킨 신미양요로 인해 군사적 긴장 상황이 극에 달하자, 흥선대원군은 열읍지도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을 반포하고 전국적 읍지 편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이 1872년에 간행된 지방 지도이다.

[형태]

『1872년 지방지도』는 총 459매의 지도로 구성되어 있고, 채색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장의 지도는 한 개 읍의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각 지도의 규격은 서로 같지 않다.

[구성/내용]

『1872년 지방지도』 「청송도호부 지도」는 다른 지도와는 달리 남쪽을 상단으로 삼았다. 지도를 보면 청송 읍치는 방광산(放光山)이 고을의 진산이 되어 읍치가 이 산 밑에 위치하고 있다. 읍치를 중심으로 향교와 객사가 있고, 부근에는 용정암(龍汀巖)과 현비암(賢妃巖)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산맥은 회화식으로 표현하였는데 북쪽에는 방광산진보현과 인접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주방산(周房山)과 주산(主山)이 연결되어 각각 영덕과 경주를 경계로 삼고 있다. 남쪽의 산줄기는 자치산(自峙山)과 보현산(普峴山)이 이어져 있고, 신녕과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서쪽의 산줄기는 자일산(紫日山)이 안동과 맞닿아 있다. 하천은 흑색 실선으로 표현하였는데 용전천이 관내를 흘러 나가고 있다.

지도에 각 면(面)의 위치는 글자로 해당 위치에 표시했으며, 창고와 사찰은 모형을 그려 넣었다. 또 읍치를 기준으로 떨어진 거리를 표시했는데 보광사(普光寺)는 부를 기준으로 5리[약 2㎞] 떨어져 있고, 사창(社倉)은 부를 기준으로 10리[약 4㎞], 대전사(大典寺)는 부를 기준으로 30리[약12㎞], 남창(南倉)은 25리[약 10㎞], 덕성사창(德城社倉)은 부를 기준으로 60리[약 24㎞], 쌍계사(雙溪寺)는 부를 기준으로 100리[약 40㎞]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읍치의 동쪽에는 송생고현(松生古縣)이 표시되어 있는데, 송생현은 지금의 청송과 1423년(세종 5)에 합속되어 폐현(廢縣)되었다. 이 밖에도 각종 기암절벽이 회화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 「진보현 지도」를 살펴보면 진산인 남각산(南角山) 아래에 읍치가 있고 그 중심으로 향교와 객사, 광한루(廣漢樓)가 모형으로 표현되었다. 그 아래에는 동서남북의 창고가 한 곳에 입지해 있는 점이 특징이며, 부근에는 쌍지(雙池)와 동천지(動泉池)가 원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도 안의 산맥은 파랑색으로 칠하고 얇은 선으로 나타내어 비교적 산세를 간략하게 그렸으며, 인근 군현과 인접하고 있는 산줄기의 명칭은 비록 생략되어 있으나 경계를 삼고 있는 군현과의 거리는 읍치를 기준으로 해서 표기했다.

먼저 북쪽을 경계로 삼고 있는 영양과는 관문(官門)을 기준으로 20리[약 8㎞]라고 적혀 있고, 동쪽은 관문을 기준으로 임물령(林勿嶺)과는 30[약 12㎞]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했다. 남쪽은 청송과 인접하며 관문을 기준으로 25리 떨어져 있고, 서쪽은 안동과 접하는데 관문과의 거리는 2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수정사(水靜寺)는 관문을 기준으로 10리, 삼성암(三聖庵)은 30리 떨어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창(社倉)과 봉대(烽臺)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내용은 전체적으로 간략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1872년 지방지도』는 조선의 마지막 관찬(官撰) 지도로서, 19세기 후반 청송도호부진보현의 산하와 각종 창고, 군사 시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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