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05
한자 靑松都護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59년연표보기 - 청송도호부 설치
개정 시기/일시 1895년 - 청송도호부 안동부에 편제, 청송군으로 개편
관할 지역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지도보기|부남면지도보기|주왕산면지도보기|안덕면지도보기|현동면지도보기|현서면지도보기

[정의]

1459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는 1459년(세조 5)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두어졌던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주왕산면, 부남면, 안덕면, 현동면, 현서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청송군(靑松郡)은 1423년(세종 5) 청보군(靑寶郡)의 청부현(靑鳧縣) 지역과 송생현(松生縣)을 통합하여 설치한 고을인데, 청송군의 설치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앞서 1418년(세종 즉위년) 세종이 왕으로 즉위하자, 기존의 청부현(靑鳧縣)소헌왕후 심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근 진보현(眞寶縣)과 통합하여 청보군을 설치하였고, 고을의 치소(治所)를 옛 청부현에 두었다.

그러나 진보현 백성들이 치소가 멀어 왕래의 어려움을 호소하였고, 이에 1423년(세종 5) 진보현을 청보군에서 분리시켰다. 대신 안덕현(安德縣)을 속현으로 거느리고 있던 송생현을 합쳐 고을 명칭을 청송군으로 개칭하였는데, 이때 ‘청송’이라는 명칭은 청부현의 ‘청’, 송생현의 ‘송’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다 1459년(세조 5) 조선 정부는 청송군의 읍격(邑格)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고, 지방관은 종3품 도호부사(都護府使)를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세조의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의 내향이기에 읍격을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시켰던 것이다.

[관련 기록]

청송도호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지리지(地理志)』류와 여러 편의 『읍지(邑誌)』류에 연혁(沿革)을 시작으로 호구(戶口), 군정(軍丁), 성씨(姓氏), 전답(田畓), 토의(土宜), 토공(土貢), 약재(藥材), 토산(土産), 성곽(城郭), 역원(驛院), 불우(佛宇), 인물(人物), 관원(官員), 형승(形勝), 산천(山川), 학교(學校), 사묘(祠廟), 고적(古蹟), 열녀(烈女), 제영(題詠) 등을 상세히 소개해 놓았다.

[변천]

청송도호부의 읍격은 1459년(세조 5) 설치 이후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유지되었다. 고을 규모와는 별개로 왕후의 내향이라는 위상과 고을 내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지 않은 관계로 개항기까지 읍격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1474년(성종 5) 이웃 고을 진보현에서 금맹함(琴孟諴)이라는 자가 진보현감(眞寶縣監) 신석동(申石同)을 모욕하는 사건이 발생해, 1474년(성종 5)부터 1478년(성종 9)까지 폐현(弊縣)된 진보현을 관할하기도 했다.

한편, 1895년(고종 32) 음력 5월 26일 반포된 칙령 제98호 「지방제도 개정에 관한 건」에 따라, 1895년(고종 32) 윤5월 1일부로 기존 8도(道) 체제가 23부(府) 체제로 개편되었다.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 군(郡), 현(縣)이 부와 군으로 이원화되면서, 전국이 23부 337군(郡) 체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청송도호부는 23부 가운데 안동부(安東府)에 편제되었고, 청송군으로 개편되었다. 아울러 지방관도 청송도호부사(靑松都護府使)에서 청송군수(靑松郡守)로 개칭되었다.

[의의와 평가]

청송도호부의 존재는 조선시대 인적 연고에 따라 읍격이 조정되고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던 양상을 보여준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08 행정지명 현행화 부동면 -> 주왕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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