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286
한자 眞安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757년 - 조람현에서 진안현으로 개칭
관할 지역 진안현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영덕군 달산면지도보기

[정의]

757년부터 고려 태조 때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진안현(眞安縣)은 757년(신라 경덕왕 16)부터 고려 태조 때 진보현과 합쳐 보성부로 개편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과 영덕군 달산면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757년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雅化)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조람현(助覽縣)이 변경된 것이다.

[관련 기록]

진안현에 대해서는 자료가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진안현은 본시 고구려의 조람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보성(甫城)이다.”라고 나타나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보성부[재암성(載岩城)이라고도 함]는 신라 경덕왕이 칠파화현(七巴火縣)진보현(眞寶縣)으로, 고구려 때의 조람현진안현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에 이 두 개 현을 합쳐 보성부를 설치하였으며 현종 9년에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진보현에는 “경덕왕이 칠파화현을 고쳐 진보라 하였으며,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甫城)이다. 또 ‘고구려의 조람현을 고쳐서 진안(眞安)으로 하여 야성군(野城郡)의 영현을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부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진보·진안 두 현이 합하여 보성부가 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진보현, 건치연혁조(建置年革條)에는 “칠파화현을 신라 경덕왕이 진보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조람현을 경덕왕이 진안으로 고치고, 야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는데, 고려 초에 두 현을 합하여 보성부를 설치하였다. 어떤 이는 재암성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려실기술』 별집 권16, 지리전고(地理典故), 주군(州郡), 진보에는 “칠파화현을 신라 때 진보로 고쳤고, 조람현은 진안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에 두 고을을 합하여 보성부를 두었는데, 재암성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757년(신라 경덕왕 16)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질 때, 기존의 조람현진안현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진안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에 설치된 야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전기에 진안현은 757년 칠파화현에서 개칭된 진보현과 합쳐져 보성부로 승격하였다.

[의의와 평가]

진안현의 설치는 통일신라시대 지방통치의 일면과 중국식 문물 수용 양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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