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284
한자 積善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고대/남북국시대/통일신라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757년연표보기 - 청기현에서 적선현으로 개칭
개정 시기/일시 920년 - 적선현에서 부이현으로 개칭
관할 지역 적선현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지도보기

[정의]

757년부터 920년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적선현(積善縣)은 757년(신라 경덕왕 16)부터 920년(고려 태조 3) 부이현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757년(신라 경덕왕 16) 군현제(郡縣制)를 강화하고, 명칭을 한자식으로 아화(雅化)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청기현(靑己縣)의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관련 기록]

적선현에 대한 자료는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때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적선현은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다. 지금의 청부현(靑鳧縣)이다.”라고 나타나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청부현은 원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는 적선(積善)으로 고쳐서 야성군(野城郡)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부이현(鳧伊縣)으로 하였다가 다시 운봉현(雲鳳縣)으로 고쳤으며, 성종 5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청송군(靑松郡)에는 “예전 청부(靑鳧)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에서 적선으로 이름을 고쳐서 야성군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초에 부이현으로 하였다가 다시 운봉현으로 고쳤으며, 성종 5년 병술(丙戌)에 또 청부현으로 고쳐서 예주 임내(任內)에 붙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건치연혁조(建置年革條)에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이다. 신라 때 적선으로 고쳐 야성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는 부이(鳧伊)라고 하였고, 또 운봉(雲鳳)이라고 고쳤으며, 성종은 청부라고 고쳐서 예주의 속현으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757년(신라 경덕왕 16)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질 때, 기존의 청기현에서 적선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때 적선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에 설치된 야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920년(고려 태조 3) 적선현에서 부이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적선현의 설치는 통일신라시대 지방통치의 일면과 중국식 문물 수용 양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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