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4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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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吉志 |
영어음역 | Gelson Engel|Wang Gilji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상규 |
[정의]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양산에서 포교 활동을 했던 독일 출신의 호주 선교사.
[개설]
독일 위템베르크 출신인 왕길지는 독일의 경건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1892년 6월 6일 바젤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인도 푸나 지방으로 파송되어 6년간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감리교선교부로 이적한 뒤 테일러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사하였다. 푸나에서 호주 출신의 여성이자 호주감리교회 목사의 딸인 클라라 바스(Clara Bath)를 만나 1894년 12월 19일 결혼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인도를 떠나게 되었을 때 아내의 뜻을 따라 1898년 호주로 이민하였다.
호주 빅토리아 주 스타웰에 거주하면서 하버드 초중등학교 교장으로 2년간 봉사한 후 빅토리아 주 장로교단(PCV)에 정식 가입하고, 한국 선교를 자원하였다.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PWMU)의 파송으로 32세 때인 1900년 10월 29일 아내와 세 아이 겔슨, 하버트, 도라를 데리고 내한하였다. 이때부터 1937년까지 38년 간 한국에서 봉사하였다. 왕길지는 호주로 귀국한 뒤 1939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왕길지는 1900년 내한한 이래로 1920년까지는 호주장로교 부산지부에서 활동했고, 그 이후에는 평양으로 이거하여 평양의 장로교신학교에서 고전어(성경 언어) 교수 및 교회사학 교수로 활동했다. 앞서 내한한 손안로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경상남도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하였는데, 기장과 양산 지역 포교에 큰 자취를 남겼다.
왕길지는 경상남도 동부 지역 곧, 울산·양산·기장·서창·언양·병영·울산 등지의 9개 지역 교회를 관할하였다. 1915년 전후 양산교회, 덕계교회 등을 관장하고 교회를 지도하였다. 1920년 1911년판 구약성경인『구약젼셔』의 개역위원으로 참여하여 개역 작업에 동참하였고, 찬송가 편찬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술 및 작품]
평양의 장로교신학교에서의 강의를 위해 1915년 4·6배판 61쪽에 달하는『고교회변증론(古敎會辨證論)』과 83쪽의『갱정후사기(更正後史記)』를 출판하였다. 그 외에도 1918년 창간된『신학지남』에, 「성 어거스틴」, 「구약상으로 본 하나님의 신」, 「성신을 파송하심」 등을 27회에 걸쳐 게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