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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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曲浦 |
영어음역 | Gokpo |
영어의미역 | Gokpo Ferry |
이칭/별칭 | 구읍포(仇邑浦),굽개,국개,국계(國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운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었던 나루.
[개설]
원래는 구읍포(仇邑浦)로 불렀다. 양산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나루 터로 낙동강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수운의 요지였다. 그러나 내륙 수송이 발달하고 잦은 홍수로 수로가 바뀌자 차차 쇠퇴하였다.
[명칭유래]
‘굽개’는 ‘굽은 개’로 강의 형태가 여러 번 꺾어지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즉, 양산천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시살등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취루산(도산천)에서 흘러오는 여러 골의 물을 합하여 순지리의 신평 앞에 이르러서 동남쪽으로 꺾인다. 초산리의 초산 앞에 이르러 다시 남쪽으로 꺾여서, 삼수리·삼감리를 지나 상북면의 중심부를 꿰뚫고 계속 남쪽으로 흘러 호계천·명곡천·송정천 등을 합하여, 동면의 석산리·금산리·가산리를 경유하여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강의 형태를 보면 동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남쪽으로 꺾이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형상이다.
『물금읍지(勿禁邑誌)』에 따르면 곡포가 ‘원수 같은 포구’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옛날 왜구들이 이 포구를 통해 잦은 노략질을 하여 이에 지친 백성들이 한탄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둑다리와 관련된 얘기도 기록되어 있다. 예전에 상서면과 하서면에서 양산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곡포천을 건너야 하는 데 힘들게 만들어 놓은 둑다리가 잦은 홍수로 떠내려가 복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한때는 통도사 주지의 도움을 받아 돌다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흉년으로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원수 같은 포구로 이름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고유어 ‘굽개’의 음차가 ‘구읍포’이며 훈차가 ‘곡포’임을 고려할 때 원수 같은 포구의 뜻은 한자음에 이끌린 해석으로 보인다.
[관련기록]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1469년) 중 ‘도진(渡津)’에는 교리 지역을 구읍포(仇邑浦)라 했고, 대천교(大川橋)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산천조에는 구읍포(仇邑浦)는 “고을 서쪽 3리에 있으니, 근원은 취서산에서 나왔으며, 호포와 합하여 황상강으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으며, 교량조에 구읍포교(仇邑浦橋)가 구읍포에 있음이 설명되어 있다.
『양산읍지(梁山邑誌)』에도 구읍포는 “지금의 곡포(曲浦)라 부른다. 군 서방 3리에 있으며 수원은 취서산에서 나와 호포에서 합류하여 황산강에 들어간다.”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곡포진에 진선(津船) 한 척이 있다. 당곡강(唐曲江)은 의춘원(宜春苑)에 있으니 본군의 옛 이름이 의춘(宜春)인 고로 지금은 고쳐 곡강(曲江)이라 한다. 무인년(1878년) 군수 이만도가 강 위쪽 돌에 새긴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