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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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救荒飮食 |
영어의미역 | Famine Relief Food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흉년 등으로 식재료가 부족할 때 주식 대용으로 먹는 음식.
[개설]
육지의 구황 음식이 봄에 집중된 반면 울릉도의 구황 음식은 계절의 구분이 없었다. 이는 무엇보다 울릉 지역의 농지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육지와의 교통도 불편하여 벼나 보리 등 식량으로 먹는 곡물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개척령 이후 울릉도로 입도한 주민들은 사면이 바다이지만 물고기를 잡는 기술이 부족하여 단백질 보충을 위해 섬의 깍새를 잡아먹고, 산마늘인 명이까지 먹었을 정도로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나리동 처자들은 쌀 한 말 못 먹고 시집 간다”, “보리밥에 고등어 대가리 먹고 간다”라는 말은 그나마 농지가 있는 북면의 나리에서 나온 말로써 어려웠던 울릉 지역의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종류]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땅이 기름지지 않아도 웬만큼 잘 자라서 육지에서는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하던 옥수수, 조, 감자 등이 울릉 지역에서는 사계절 먹는 구황 음식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양이 절대 부족해서 지역적인 차이는 있으나 북쪽에서는 명이를 넣은 명이밥을 많이 먹었고, 남쪽 통구미에서는 대황을 넣은 대황밥을 많이 먹었다. 대황과 명이는 모두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산나물로, 대황밥은 물에 우려낸 대황을 옥수수 등의 곡식과 섞어서 한 밥이고, 명이밥은 명이 줄기를 썰어서 곡식과 섞어 한 밥이다.
1950년경에는 ‘무밥’이라고 하여 무를 썰어서 보리나 옥수수와 함께 밥을 짓기도 했는데 무의 양에 따라 집 안의 경제적 부를 판단하기도 하였다. 옥수수를 갈아서 감자를 넣고 만든 옥수수밥은 이른바 중산층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식량이 귀하다 보니 울릉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음식물 부조가 많아서 잔치가 있으면 옥수수와 콩나물, 두부 등으로 부조를 대신하였다. 쌀밥은 명절이나 제사에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보리쌀이나 감자를 가득 채운 그릇에 쌀밥을 얹은 것으로 식구가 많거나 여자아이들의 경우 이마저도 먹기 힘들었다.
염전을 만들 수 있는 해변이 부족한 울릉 지역에서 소금을 만드는 일은 순전히 어린아이들 차지였다. 소금을 만들려면 드럼통의 옆면에 구멍을 몇 개 뚫어 놓고 밑에 화덕처럼 돌을 괸 뒤 바닷물을 붓고 불을 피운다. 바닷물이 열에 증발하고 나면 소금이 아주 조금 남는데 한 주먹의 소금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물을 붓고 불을 피웠던 것이다. 지금도 울릉 지역에서는 어린 시절 소금을 만들기 위해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살았다고 하는 어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울릉 지역에서는 육지와 달리 염장 음식이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육지 사람들은 소금이 부족했던 울릉 지역의 특수성을 이야기하지만 울릉 지역 사람들의 말은 다르다. 염장 음식에 이용되는 치어, 곧 작은 물고기들은 얕은 바다의 뻘이나 모래 바닥에서 자라지만, 울릉도 근해는 심해로서 염장에 사용하는 치어들이 잡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 년 내내 신선한 해산물이 잡히는데 딱히 염장을 해서 먹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울릉도의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 역시 오징어 젓갈 등의 염장 음식으로 만들어 먹지 않는데, “오징어 젓갈은 냄새가 나서 이곳에서는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염장법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울릉 지역 사람들의 말처럼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났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