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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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玉山面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있는 집성촌.
[개설]
의성군 옥산면은 104.1㎢의 면적으로 의성군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이 연접된 곳이다. 옥산면은 처음에는 35개동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10개의 법정동과 17개의 행정리·행정동으로 개편되었다. 옥산면에는 안동 권씨와 성주 도씨, 아주 신씨, 경주 최씨, 안동 김씨, 함안 조씨 등이 많이 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안동 권씨의 세거 집성촌인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 1리 선바위 마을은 1350년경에 장거라는 사람이 개척하였다고 한다. 그 후인 1584년경 안동 사람 권숭조가 입향하여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권숭조의 후손들은 선바위 마을 외에도 이웃한 옥산면 입암 2리의 국골 마을로 분가하여 대성(大姓)을 이루고 있다.
안동 김씨의 세거 집성촌인 옥산면 실업 1리 본마을은 16세기 초에 안동 사람 김기량이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나 실제 입향조는 보백당 김계행의 손자 김세상으로 알고 있다.
함안 조씨의 세거 집성촌인 옥산면 실업 2리 제동 마을은 1592년(선조 25)에 함안 조씨 조영개(趙英凱)라는 선비가 입향하여 개척하였고, 그의 후손들이 세거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옥산면 감계 1리는 1542년(중종 37)에 동래 사람 정사신이 개척한 마을이라고 전하나 그 후에 입향 한 성주 도씨와 경주 최씨, 아주 신씨가 세거하여 대성을 이루었다. 마을 서편에 탕건(宕巾)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넘어지면 이 마을의 성주 도씨가 망한다는 전설이 전하는 것으로 볼 때 성주 도씨가 감계 1리에 세거해 온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성주 도씨 문중은 탕건 바위를 엄중하게 보존 관리하고 있다.
[현황]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의 입암 1리와 실업1리, 실업 2리, 감계 1리 등이 집성촌이다.
입암1리 선바위 마을은 안동 권씨의 세거 집성촌으로 『의성 군지』가 발행된 1998년을 기준으로 총 176가구가 살았으며, 그 중 권씨가 45가구였다. 선바위 마을에는 안동 권씨의 제실인 청학제(靑鶴濟)가 있는데, 약 90년 전에 안동 사람 오우당 권전의 공적을 기리고자 건립하였으며, 권전의 문집과 목판 200판이 보관되어 있다.
실업 1리 본마을은 안동 김씨의 세거 집성촌으로 1998년 기준으로 총 98가구가 살았으며, 그 중 김씨가 40가구였다. 댓골 마을의 안동 김씨는 입향조인 김세상의 유업을 추모하기 위해 어락정이라는 사우를 짓고 매년 제향하고 있다.
실업 2리 제동 마을은 함안 조씨의 세거 집성촌으로 1998년 기준으로 총 53가구가 살았는데 그 중 조씨가 26가구였다. 제동 마을에는 입향조인 조영개의 공적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매년 입향조를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감계 1리 감골 마을은 성주 도씨와 경주 최씨, 아주 신씨의 집성촌으로 1998년 기준으로 100여 가구가 살았으며, 그중 도씨가 30여 가구, 최씨가 16가구, 신씨가 15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