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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024
한자 勞動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서승갑

[정의]

임금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조직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일체의 조직적인 활동.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성남지역에서의 노동운동을 말한다.

[개관]

성남지역의 자유노동자들은 영등포 공업지대 노동력의 원천이며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주체였다. 성남지역은 노동운동이 발전하는 데 있어 배후기지의 역할을 하며 1930년대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세포조직을 구축하는 지역으로 부상한다. 그 중심축에 자리하는 것은 광주공산당협의회사건이다. 광주공산당협의회를 주도한 석혜환 등 성남지역 노동운동가들은 비합법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사회주의운동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성남지역의 노동운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양상이 변한다. 1920년대 성남지역 노동운동은 (그 시대의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1920년대 후반부의 운동은 민족운동에 포괄되어 전개된다. 1930년대에는 사회주의운동과 연계한다. 비록 노동자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었지만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에서 보여준 연계 투쟁은 반제국주의 투쟁 양상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성남지역의 노동운동은 사회주의운동과 밀착하면서 좌경적 방침을 교조적으로 고수하려는 경향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 통일전선에 입각하여 혁명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소부르주아 인텔리 및 학생층 위주의 운동에서 탈피하여 생산현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 기반을 구축하려는 노력도 보여주고 있다.

[전개]

성남지역 노동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그 시발점이 되는 것은 신간회의 역할이다. 신간회 광주지회는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한편, 노동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접근한다. 1929년 3월에는 신간회 광주지회장 석혜환이 원산파업단에 격문을 발송한 혐의로 10일간 구류처분을 받기도 했다.

신간회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연합하여 해방운동을 추진하던 사회주의 계열은 1930년을 전후하여, 경기도지역에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강경투쟁으로 선회한다. 이로서 성남지역 노동운동은 독자적인 운동노선을 취하게 된다.

1930년에 조직한 남한산노동공조회(南漢山勞動共組會)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근거하여 석혜환, 정영신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노동운동단체이다.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상인 등을 망라하여 참여시켰다.

1933년, 남한산노동공조회는 광주공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한다. 일제경찰의 단속을 피하고 지하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된 조직의 재편이었다. 남한산성에서 광주지역으로 조직범위를 확대함으로서, 수공업위주의 공업 기반으로 그 조직활동 범위가 협소한 성남지역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계통적인 노동조직 체계로 규합하려는 움직임이었다.

1934년 12월, 성남지역 노동운동자들은 광주공동조합을 광주공산당협의회로 개편하면서 사회주의운동의 노선을 강화한다.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구성원은 석혜환, 정영신(鄭榮信), 구상회(具想會), 구본흥(具本興), 김흥종(金興鍾), 구용홍(具溶弘), 정영배(鄭永培), 이양식(李良軾), 구희서(具喜書), 선진수(宣鎭秀), 강달영(姜達榮), 이순응(李順應), 김귀용(金貴用) 등이었다. 1935년 2월에는 광주공산당협의회 창립총회를 개최한다. 내부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의식화작업에 치중하는 한편, 외부조직과의 연계투쟁도 강화한다. 월 1회씩 노동회관에 모여 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노동야학을 실시하였으며 대중교양을 위해 서적을 구입하고 교양사업을 전개하였다. 선전물도 제작했는데 특히 매월 1회씩 삐라를 작성하여 배포했다. 외부적으로는 서울 영등포와 인천 등지에까지 조직을 확산시켜 나갔다. 조직원들은 인천과 영등포 공장지대에도 침투하여 활동하며 1934년에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차원에서 조직 강화된 인천적색노동조합과 연계 투쟁을 도모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조직활동은 당시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공동 노선이나 지령에 따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사회주의를 대중화하려는 양상의 일단을 나타낸다. 운동을 성남지역의 남한산성에 기초한 것은 일제의 감시망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고 이 지역의 정서가 반일적인 항쟁의식에 토대하기 때문이다.

1936년 1월 조직원이 실수로 노상에서 분실한 조직 관련 물건이 일본경찰 손에 우연히 들어가 광주공산당협의회는 붕괴되고 만다. 1936년 1월 9일 석혜환, 정영신 등 13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결과적으로 조직이 와해된다. 1936년 3월 16일에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 관련자 12명 중 구희서 등 5명은 기소중지로 석방되고, 석혜환 등 7명은 공판에 회부되었다. 4월 20일에 광주공산당협의회사건의 주도자 석혜환 등 7명에게 징역 6개월형에서 3년에 이르는 중형이 선고된다. 당시 남한산성에서 조직된 운동단체가 공장 밀집지역인 영등포와 인천에까지 조직원을 파견하였다는 점은 크게 주목할 점이다.

[의의]

일제강점기하 성남에서 전개된 노동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의 노선과 중첩되어 나타나는 특성을 지닌다. 독립운동의 배후기지로서의 성남지역은 독립운동의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정신의 원천지이었다. 식민지 착취구조 아래에서 공업부문의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운동의 기본 토양이 척박했고, 지역적 특성과 연계되어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영등포지역과 멀리 인천지역의 노동운동과 연계하여 노동운동의 조정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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