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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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朴杰男墓域 |
영어공식명칭 | Tomb Area of Bak Geolnam in Samch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산148 |
시대 | 조선 |
집필자 | 홍성익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03년(선조 36) - 박걸남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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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3월 11일 - 삼척박걸남묘역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삼척박걸남묘역 강원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소재지 | 삼척박걸남묘역 -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산148 |
성격 | 묘 |
양식 | 묘비 망주석 문인석을 구비한 원형 봉토분 |
관련 인물 | 박걸남|이순신 |
크기(높이,지름) | 봉분 3.7m[높이]|18.2m[둘레] |
소유자 | 밀양박씨 종중 |
관리자 | 밀양박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강원도 문화재자료 |
[정의]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박걸남의 묘역.
[개설]
박걸남의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자(字)는 사정(士貞)이며, 호는 의암(衣岩)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삼척군지(三陟郡誌)』, 『진주지(眞珠誌)』 등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고, 병조판서가 증직되었다고 한다. 『밀성박씨세보(密城朴氏世譜)』에 따르면 무술년 귀향하여 계묘년 4월 10일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1598년(선조 31)에 귀향한 후 1603년(선조 36)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함께 활약한 오극성(吳克成)[1559~1616]의 문집 『문월선생문집(問月先生文集)』의 「임진일기(壬辰日記)」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무신(武臣)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삼리에 있는 묘역 안에는 박걸남 장군과 후손들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5기의 봉분 가운데 가장 위쪽에 위치한 것이 박걸남 장군의 묘이다. 봉분 앞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상석이 있고 봉분 중심으로 우측에 묘비 1기, 좌우에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봉분은 둘레 18.2m, 높이 3.7m이다. 상석은 길이 5m, 폭 1.4m이다. 묘갈은 총 높이 180㎝, 비신은 135㎝×58㎝×13.5㎝이다. 묘비는 전·후면 상단에 ‘유명조선국선무공신병조판서 박공휘걸남묘갈명(有明朝鮮國宣武功臣兵曹判書 朴公諱杰男墓碣銘)’이라는 전액(篆額)이 있고, 후면의 비문 말미에 ‘숭정기원후오갑을묘시월(崇禎紀元後五甲乙卯十月)’이라고 되어 있어 1915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은 윤재선(尹在善)이 찬하고 11세손 종념(種念)이 전액(篆額)과 글씨를 썼다. 묘역의 앞에는 영모재(永慕齋)라는 재실(齋室) 1동이 한식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이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보수되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묘역은 1984년에 보수 정화된 이후 부분 보수가 이루어졌다.
[위치]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산14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삼척박걸남묘역은 묘비, 망주석, 문인석 등을 구비한 원형 봉토분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당시 장군 이순신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운 의병장 또는 무신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공을 세운 장군의 묘역을 보존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이 있다. 2000년 3월 11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3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