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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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Jiwabari, High Spirits of Dur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
집필자 | 김효경 |
[개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서는 김매기를 마친 농군들이 노동의 힘겨움을 위로하기 위해 한바탕 신명난 놀이판을 벌인다. 부잣집 마당에서 기와를 얹을 때처럼 농군들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로 한 사람씩 지나가는 방식으로 놀이를 하는데, 이를 지와바리(혹은 지와바지)라고 한다. 이때 아이를 낳는 산고(産苦)를 흉내 내며 여름 농사의 힘든 고비를 알리고,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산고를 견뎌내고 비로소 알찬 곡식을 생산하게 되었음도 알린다. 놀이를 통해 힘겨운 농사일을 마감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인 것이다.
[농군들의 한바탕 신명]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서는 두레노동이 한참인 시간에 농군들의 지친 심신을 위무하기 위해 지와바리를 행한다. 일 년 농사의 고비가 되는 김매기는 허리를 굽히고 논바닥을 훑어가며 장시간 해야 하는 노동이므로, 그 어떤 농사일보다 힘겹다. 따라서 힘든 노동을 견뎌내고 노동의 피로를 한 순간이나마 잊고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치판을 벌인다. 그 날 김매기를 가장 많이 한 부잣집에 가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노는 것이다.
이때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에서 생산의 매체가 되는 아이를 낳는 행위를 모방한다. 두레의 주인인 농기를 중앙에 세우고 그 위로 올라가 아이를 낳는 시늉을 한다. 새 생명의 탄생은 두레꾼들이 염원하는 가을 들녘의 풍성함을 나타낸다. 새로 태어난 ‘땍대구리’는 호미농사로 지친 어른들께 술대접을 하고, 그 동안의 수고에 보답하듯 한 모금의 술이나마 정성스레 대접한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지친 육신과 마음의 피곤을 풀고 한바탕 복을 비는 지와바리를 행한다. 농군들이 등을 구부리고 서로의 등을 밟아가며 이어가는 지와바리는 지붕이 단단하기를 바라며 밟는 기와밟기처럼 집안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한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풍년을 희구하는 바람이 담긴 지와바리에는 풋풋한 농심(農心)이 담겨져 있다.
[대동으로 하나 되는 두레노동]
농군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되는 김매기는 제초제가 보급되기 이전까지 협동 노동으로 해결했다. 농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협동의 산물이므로 대동(大同)으로 하나 되는 장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두레’이다. 두레를 조직하려면 먼저 ‘두레공사’라 하여 징을 쳐서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한다. 두레꾼을 조직하고 논맬 시기, 작업순서, 두레품삯 등을 정한다.
모든 일은 공좌상이라고도 불리는 두레꾼의 어른인 ‘좌상’의 지시로 이루어진다. 좌상은 최연장자 중에서 덕망이 있고 인품이 좋아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연장자는 농사의 경험이 많아 농사일을 수월하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논부터 맬 것인가를 정하고, 품삯도 정하며, 작업한 것을 보고 일이 잘못되었으면 다시 하도록 지시도 내린다.
실질적인 일꾼의 우두머리인 총각좌상은 30세 정도로 나이는 많지만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으로 선출한다. 총각좌상을 맡으면 혼인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선호하는 직책이다. 또한 총각좌상에게는 심부름꾼인 ‘꽁배’를 지명하고 장악할 권한이 부여된다. 꽁배는 부잣집의 새끼머슴이나 두레 일꾼 중 가장 나이 어린 사람으로, 논을 맬 줄 모르는 15세 가량의 아이다. 어른들을 위해 담배 횃불을 가지고 다니며 온갖 심부름을 도맡는다. 20세 이상의 장정은 모두 일꾼이 된다. 이들의 품삯은 일을 하는 정도에 따라 상중하로 정한다.
두렛일은 공동 작업이므로 일을 하다 보면 성글게 하기도 하므로 반드시 점검하여 뒤처리를 해야 한다. 때문에 일부 마을들에서는 첫물매기는 두레로 하지 않기도 한다. 모내기를 하고 20일 혹은 15일 정도가 지나면 김을 매기 시작한다. 일단 두레가 조직되면 일주일 정도 공동 작업을 한다. 집에서 아침 일찍 흰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일터로 향한다. 여름철에는 날이 일찍 새므로 오전 7시경에 작업을 시작한다. 일꾼들이 하나둘 농기를 꽂아둔 곳으로 모이면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첫참(처음 차례)’ 맬 논으로 향한다.
‘큰기’를 앞세우고 일터로 나갈 때는 반드시 풍장을 앞세운다. 풍장은 징 1개, 북 1개, 장고 1개, 꽹과리 2개, 법고 2개, 나팔 1개를 갖추는데, 법고는 형편에 따라 2개가 되기도 하고 많을 때는 10개가 되기도 한다. 이중 나팔이 가장 앞서는데,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를 내기 때문이다. 일을 하러 나가면 기는 그날 작업하는 논 주변에 세워둔다. 그런 후 한바탕 풍장을 울리고 김을 매기 시작한다.
김을 맬 때는 일렬로 서서 앞으로 죽 매어 나간다. 논의 양쪽 끝에는 손놀림이 빠른 사람을 두어 남들보다 일을 잘 해내도록 한다. 이런 사람을 ‘벼루잡이’라 한다. 양끝의 벼루잡이들이 일을 잘해서 빨리 매 나오므로 자연스레 둥글게 원이 형성되어 일을 마치게 된다. 이때 마지막에는 모두들 “우여!”라고 외치며 발로 풀을 짓이겨서 땅에 꽂아 넣으며 일어선다. 좁은 공간에서 호미질을 하면 발을 다치게 되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 방식을 ‘쌈 싸는 것’이라 한다. 일꾼들이 김을 매 나가면 뒤에서 몇 사람이 흙속에 묻힌 벼 포기를 세우며 뒤따른다. 이때는 논매기 농요인 ‘얼카산이야’나 ‘지심소리’를 부른다.
[한바탕의 기싸움과 기세배]
두렛일의 우두머리가 되는 ‘큰기’를 장만한 시기에 따라 마을별로 형과 아우를 정한다. 기를 가장 먼저 마련한 마을을 선생님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마을들은 형과 막내로 나눈다. 형님기가 서 있으면 인사를 하는데, 만약 그냥 지나치면 혼쭐이 난다. 예전에는 힘 좋고 권력이 센 마을에서 기싸움을 걸어 형님이 되곤 했다. 힘이 없는 마을의 두레패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 형님 기가 서 있으면 쫓아가서 인사를 하거나 멀리 돌아다녔다.
두렛일을 할 때 두레패가 다음 논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고갯마루나 모퉁이 길을 지나면 긴 나팔을 불어 두레패가 지나감을 알린다. 나팔소리를 들으면 일꾼들이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준다. 간혹 다른 마을의 두레패와 마주치면 서로 길을 비키라고 주장한다. 먼저 인사하고 지나가라고 시비를 하다가 곧잘 싸움이 되곤 한다. 대두레가 결성되었을 때에도 인근 마을 간에 힘자랑을 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기는 마을의 어른이므로 말을 타고 가다가도 기를 보면 내려서 누구라도 예를 갖추었다.
다른 마을의 구역을 지나갈 때는 으레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서로 버티다가 싸움으로 비화될 것 같으면 긴 나팔로 ‘천하상’을 분다. 천하상 소리는 농군에게 “두레싸움이 벌어지니 준비해라!”는 신호 혹은 “어디 한번 덤벼봐라!”라는 신호로 간주된다. 응하려면 일을 중단하고 나와서 두 마을의 풍물패가 함께 모여 합고(合鼓)를 친다. 합고를 치지 않고 무시하면 싸움으로 비화된다.
합고를 쳐서 이긴 편과 진 편을 나누기도 한다. 상대편 마을보다 풍물의 속도가 빠르거나 소리가 커서 상대편 풍장패를 제압하면 이긴다. 때문에 풍물재비들은 진땀을 흘리면서 동네의 명예를 걸고 풍물을 친다. 이러한 합고 맞추기로 승부가 나지 않을 때에는 농기 싸움이 벌어진다. 이때 동네 장정들은 자기 마을의 농기를 에워싸고 싸움 태세를 갖춘다. 이 농기의 권위는 절대적이므로 모독하거나 쓰러뜨리지 않아야 한다. 농기가 쓰러지는 것을 큰 수치로 알았고, 동네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여겼다.
상대편의 농기를 쓰러뜨리거나 기 끝에 매달린 꿩장목을 빼앗는 것으로 승패를 가린다. 상대편의 농기를 부러뜨리고, 악기를 빼앗아 부숴버리기도 한다. 농기 싸움에서 지면 수치감을 느끼며, 그 후로 얼마 동안은 꿩장목을 달지도 못한 채 이긴 마을의 기를 만나면 기세배를 올린다. 이긴 마을의 좌상은 농기 싸움에서 패한 마을의 상수잡이(상쇄잡이)와 좌상을 잡아다가 볼기를 치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한다. 진 마을에서는 이긴 마을의 농기에 수건을 세 번 매주어 항복을 표시한다.
[‘얼카산이냐’를 외치는 농군들의 함성 소리]
두레 일판이 벌어지면 힘든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소리를 곁들인다. 논 매러 들어갈 때 풍장을 한바탕 울려 신명을 돋우고, 고된 작업의 고됨을 잊도록 북이나 풍장을 울려주었다. 선소리꾼이 다양한 소리로 선창을 하면 논을 매는 두레꾼이 ‘얼카산이냐’나 ‘지심매기’로 추임새를 넣는다.
“얼카산이냐/높~은 산에다/ 얼카산이냐/불당을 짓~고/얼카산이냐/
부처님을 위해서/얼카산이냐/ 올려다 보느냐/얼카산이냐/
만학은 천봉/얼카산이냐/ 내려다 보느냐/얼카산이냐/
백사지 땅이다/얼카산이냐/ 앞문을 열구/얼카산이냐/
바라를 치니/얼카산이냐/ 개명 산천이/얼카산이냐/
다밝아 온다/얼카산이냐”
북이나 징에 맞추어 한바탕 ‘얼카산이냐’를 부르고 나면 어느덧 논 한 배미가 다 매어져 있다. 하나의 논배미 작업이 끝나가면 선소리꾼이 ‘쌈소리’를 불러 일이 마무리되어감을 알린다. “우~아~아~”라고 신호를 하면 농군들은 논을 중앙으로 몰아 싸면서 “아~아~아~아~에~아~아~”로 받는다. ‘얼카산이냐’와 ‘쌈소리’가 어우러지는 동안 작업은 끝이 난다. 이처럼 선소리꾼과 농군들이 소리를 주고받는 것을 통해 일을 재촉하기도 하고, 바삐 놀리던 손을 풀면서 일의 강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특별히 누군가 지시를 하지 않아도 풍장소리에 맞추어 스스로 소리를 받다 보면 주체적으로 노동의 강도와 진행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농군들이 만들어낸 자율적인 노동조절 장치이다.
[풍년을 희구하는 지와바리]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김을 매고 나면 농군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줄 놀이판이 마련되기도 한다. 간혹 부잣집의 논을 매고 나면 부자가 농군들을 위해 한마당의 잔치판을 벌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두렛일을 마치고 농군의 축제일인 백중(百中) 즈음에 잔치판을 벌인다. 일을 마치고 동네로 들어서면 “자! 오늘랑 아무개 네 집으로 가서 지와바리 놀이나 하세!”라고 외친다.
‘지와바리’는 ‘기와밟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집을 짓고 기와를 얹을 때 기와가 자리를 잘 잡도록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 흙을 다지는 작업을 하는데, 이것을 ‘기와밟기’라 한다. 기와를 밟듯 사람들의 구부린 등을 밟고 나가는 것이므로 ‘지와바리’라 부른다. 두렛일을 마치고 큰기를 앞세운 농군들은 행렬을 지어 부잣집으로 향한다. ‘쩍찍기’라는 길굿 풍장이 울리면 농군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뒤를 따라간다.
청이 좋은 소리꾼이 “워~리~야~어, 워~리~야~어~”라고 소리를 메기면 뒤를 따르면서 농군들도 “워~리~야~워~, 워~리~야~워~”라고 받는다.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놀다 보면 어느덧 지와바리를 할 집에 도착한다. 부잣집 마당에 들어서면 한바탕 풍장을 울리고 기를 마당 한가운데 세운다. “워~리~야~워~”를 외치며 일제히 큰기를 에워싸면 풍물을 그치며 지와바리가 시작된다. 청이 좋고 입담이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기 위로 올라가서 “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댁이 인심 좋고 마음씨 좋다 하여 왔으니 한바탕 놀아보세!”라고 외친다.
이 소리를 들은 농군들이 “예~!”라고 대답한다. 선소리꾼의 소리에 맞추어 농군들은 일제히 “예~!”라고 외친다. 기 위에 있던 사람이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라고 하며 마치 산달[産月]이 되어 진통이 오는 것처럼 괴로워하면서 소리친다. 그러면 “예~!”라고 대답한다. 다시 “내가 잉태한 지가 열 달이 되어 아이를 낳으려는가 보다~.”라고 하면 또 “예~!”라고 외친다. 이 소리가 들리면 작은 사내아이 한 명을 기의 위쪽으로 올려준다. 그러면 기 위에 있던 선소리꾼이 “아이를 낳았다!”라고 외치며 좋아하면서 아이를 내려준다.
밑에 있던 농군들이 “아이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요?”라고 소리치면 기 위에 있는 선소리꾼이 “애 이름은 땍대구리[딱따구리]라 지어야겠다!”라고 한다. “예~!”라고 대답하면 선소리꾼이 아이를 향해 “너 동네 어른들 술 잡수시게 해라!”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동네 어른들 술 잡수쇼! 동네 어른들 술 잡수쇼!”라고 크게 외친다. 동네 사람들이 일제히 “예~!”라고 외치면 아이가 기 위에서 내려온다. 아이가 내려가면 기 위에 있던 선소리꾼이 “여보게들 이렇게 여럿이 모인 김에 절이나 하나 짓고 가세!”라고 외친다. 농군들이 “예~!”라고 대답하면 선소리꾼이 기 위에서 내려온다.
농군들이 대문 앞부터 대청을 향해서 허리를 구부려 줄을 이으면 한 사람씩 등을 밟고 맨 앞으로 나가 이어서 구부린다. 이렇게 가는 것을 ‘지와바리’라고 한다. 이때 선소리꾼이 “어데! 산이가 지었나?”라고 선창하면 농군들은 “정기 산이가 지었지!”라고 반복한다. 이러는 동안 그 집의 마루나 대청에 불밝이쌀을 가득 담아둔다. 불밝이쌀이 있는 대청까지 지와바리 하여 온 농군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축원한 후 계속 지와바리 하여 집안 곳곳을 다닌다.
굴뚝, 장독대의 터주, 부엌의 조왕을 위한다. 터주나 조왕께는 청수를 한 그릇 바치는데, 조왕 앞에는 반드시 안주인의 그릇에 물을 담아 올린다. 치성을 마친 후에는 마당으로 나와 한바탕 농악을 치고는 준비해둔 음식을 먹으며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고통을 견뎌내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서로의 등을 밟으며 지와바리를 하는 것은 인고의 시간을 통해 풍년으로 가는 가교(架橋)를 마련하는 것이다.
새 생명은 앞으로 있게 될 수확, 즉 생산을 상징하므로 지와바리는 생산의 고통을 견딘 농민들의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장시간에 걸친 두레노동은 아이를 낳는 고통처럼 고되고 힘들지만, 그것을 참고 견뎌내면 새 생명인 황금 들녘을 선물로 받게 된다. 풍성한 황금 들녘은 땍대구리의 탄생만큼이나 값지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혹여 집안에 끼었을지 모를 온갖 액을 몰아내고 복만을 초치하는 지신밟기까지 추가함으로써 온전하게 풍년을 희구하게 된다.
[지와바리의 진정한 복원]
집약적 노동이 요구되는 농업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두레를 통해 대동(大同)의 장을 만들어왔다. 두레는 마을 전체가 혹은 여러 개의 마을이 하나가 되는 협업의 장으로, 전통사회에서 만들어낸 대동단결과 화합의 상징이다. 일을 함께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일을 마친 이후의 시간에도 대동의 모습이 이어진다. 일을 마친 후 잠깐의 휴식은 다음에 이어질 노동의 효율성을 배가시키며,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줌으로써 보다 활기찬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고된 김매기 노동을 마치고 모처럼 잔치판을 벌여 먹고 마시며 대동이 하나가 되는 것이 ‘두레잔치’이다.
두레잔치는 마을별로 ‘소두레’로 놀기도 하지만, 여러 마을이 하나가 되는 ‘대두레’로 놀기도 한다. 일과 놀이가 어우러짐으로써 피로를 풀고 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땍대구리의 출산이 그것을 암시한다. 제초제의 사용으로 인해 김매기를 하지 않게 되면서 두레노동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었다. 두레노동의 쇠퇴로 두레잔치의 일환인 지와바리도 사라졌다. 더 이상 두레와 지와바리를 되살릴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 담긴 대동이 하나가 되어 소망을 표출하는 마음은 되살려야 한다. 고된 노동을 희망으로 분출시킴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지와바리의 민속학적 의의]
대동이 하나가 되어 베푼 지와바리는 아이를 낳듯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농심(農心)을 담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김매기를 하며 참고 견뎌낸 시간이기 때문이다. 힘든 김매기를 마친 농민들에게 지와바리는 한바탕의 축제판인 동시에 땍대구리를 낳듯 기쁨으로 맞이해야 하는 황금의 들판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