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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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性皓 |
영어공식명칭 | Yang Seong-ho |
이칭/별칭 | 삼원성호(杉原性皓),금촌관일(今村貫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출생 시기/일시 | 1910년 7월 10일 - 양성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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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7년 9월 13일 - 양성호 일본에서 나고야합동노동조합 미에현 구와나지부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3월 3일 - 양성호 기소유예 처분 |
몰년 시기/일시 | 1965년 5월 10일 - 양성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 양성호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구천리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 |
활동지 | 일본 - 일본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양성호(梁性皓)[1910~1965]는 1910년 7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서 태어났다. 삼원성호(杉原性皓), 금촌관일(今村貫一)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활동 사항]
양성호는 1937년경 채병호(蔡炳鎬), 정차원(鄭次元) 등과 함께 일본에서 간사이전철[關西電鐵] 공사장 인부로 일하면서, 나고야합동노동조합[名古屋合同勞動組合] 미에현[三重縣] 구와나지부[桑名支部]에서 활동하였다. 나고야합동노동조합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 정신으로 한 인민 전선 운동의 전개를 목표로 활동하였다. 명합노재건준비위원회(名合勞再建準備委員會)를 결성하여 선언·강령과 행동 방침을 결정하고 조직의 확대·강화에 진력하였다. 이후에는 도야마현[富山縣] 가미니카와군[上新川郡] 오야마촌[大山村] 코미야마 스기스타[小見杉下] 반장(飯場)에서 채병호 등과 함께 도야마합동노동조합[富山合同勞動組合]을 재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면서 양성호는 1937년 9월 13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양성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으며 재판에 회부되었는데, 1939년 3월 3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때까지 약 1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양성호는 1965년 5월 1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양성호에게는 2018년 8월 15일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