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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양읍 아들 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1786
한자 鳳陽邑-
영어음역 Bongyang-eup Adeulbawi
영어의미역 Son Stone of Bongyang-eup
이칭/별칭 「아들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관련 지명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지도보기
채록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
성격 전설|기자치성담|암석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아들|며느리|시부모
모티프 유형 자식을 바라는 며느리의 치성|기자점을 치는 대상이 된 바위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에서 아들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봉양읍 아들바위」북바위[鼓巖]에서 10년 동안 치성을 드렸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던 부부가 목숨을 잃은 곳에서 바위 하나가 생겼는데, 마을 사람들은 두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들바위’라고 불렀다는 기자치성담이자 암석유래담이다. 봉양읍 박달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 원박리(院朴里)이며, 이곳에 북바위와 아들바위가 위치해 있다.

[채록/수집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는 모두 「아들바위」로 되어 있다.

[내용]

옛날 원박리에 양친을 모시고 사는 젊은 내외가 있었다. 농사를 짓고 사는 단란한 집안이었으나 아들 내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손자를 낳아 대를 잇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부모의 성화가 심했다. 이에 젊은 며느리는 뒷산에 올라 북바위에 치성을 드리기 시작하였다.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매일 바위 앞에 가서 치성을 드렸다. 이렇게 10년 동안 정성을 드렸지만 아이를 갖지는 못했다. 10년이 되던 어느 날 며느리는 언제나와 같이 북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동안, 신병을 앓고 있던 시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3년 후 시아버지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부모가 모두 작고한 후에도 며느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북바위에 가서 치성을 올렸다.

어느 해 겨울, 눈이 수북이 쌓이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며느리는 눈길을 헤치며 북바위에 가서 무릎 꿇고 치성을 드렸다. 추위에 몸이 꽁꽁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치성을 마친 며느리는 산을 내려오려다 그만 논 속에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집에서 아내가 오기만 기다리던 남편은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 눈 속에 파묻혀 죽은 아내를 발견하고는 아내를 가슴에 안은 채 남편마저 눈 속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 후 두 내외가 부둥켜안고 죽은 자리에서는 바위 하나가 솟아났는데, 사람들은 그 바위를 아들을 바라다 죽은 내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아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번은 마을에 살고 있는 부인이 바위에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그 후 아들을 낳았다. 또 한 번은 마을의 다른 부인이 바위에 돌을 던졌는데, 바위에 올라앉지 않고 땅에 굴러 떨어졌다. 그 부인은 딸을 낳게 되었다. 그 후 잉태한 여인이 아들인가 딸인가를 미리 알고 싶으면 바위에 가서 돌을 던져 점쳐 보는 풍습이 생겼다.

[모티프 분석]

「봉양읍 아들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자식을 바라는 며느리의 치성’, ‘기자점(祈子占)을 치는 대상’ 등이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며느리는 자식 낳기를 소망하며 치성을 올렸으나 결국 자식을 얻는데 실패한다. 오히려 그러는 동안, 시부모는 물론 부부도 목숨을 잃게 되었다. 「봉양읍 아들바위」는 죽으면서까지도 자식을 원했던 며느리의 심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자식을 얻지 못하고 숨진 그들의 마음을 아들바위에 새겨 전하고 있다. 또한 그 바위는 기자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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