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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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田敎會 |
영어공식명칭 | Namjeon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북참길 19-9[남전리 618-1]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신재식 |
설립 시기/일시 | 1897년 10월 15일 - 남차문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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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시기/일시 | 1900년 2월 21일 - 남차문교회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남전리 이윤국의 집 예배처로 함 |
이전 시기/일시 | 1957년 - 남전교회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618-1로 이전 |
최초 설립지 | 남차문교회 -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남전리 |
현 소재지 | 남전교회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북참길 19-9[남전리 618-1] |
성격 | 교회 |
설립자 | 이윤국 외 7명 |
전화 | 063-841-3195 |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개설]
남전교회는 1897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남전리에 설립된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이다. ‘남참문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으며, 도남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교육했다.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1970~1980년대 인권운동과 농민 권익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남전교회는 2000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유적지 교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변천]
남전교회는 1897년 10월 15일에 설립[남전교회 교회록 기록, 『남전교회 100년사』]되었다. 1900년 2월 21일[남전교회 당회록] 이윤국의 집을 ‘남차문교회’라고 부르면서 독자적인 예배 처소를 갖게 되었으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전킨(William M. Junkin)이 담임 선교사였다. 1901년 초가 5칸의 예배당을 마련하였고, 1921년에는 기역자 예배당을 증축하였다. 남전교회는 남학교인 도남학교(道南學校)를 1910년에, 여학교인 미성학교(美聖學校)를 1922년에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1923년에 남녀공학인 신성학교(新聖學校)로 통합하여 1942년 일제에 의하여 폐교될 때까지 민족교육과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남전교회와 도남학교 학생들은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 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1919년 4월 4일 문용기[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등 4명이 순국하였다. 1950년에 장로교 분열 과정에서 기장 남전교회와 예장 남전교회로 분리되었다. 1957년에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618-1로 옮겼으며, 1985년 현재의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2000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로부터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총회 유적 제1호 교회’로 지정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전교회는 주일 낮 예배, 주일 오후 찬양예배, 수요 기도회로 모인다. 익산시 오산면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회로서, 지역사회 노령층을 위해 남전노인복지센터, 남전노인요양원, 남전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가복지 활동을 하고 있다.
[현황]
남전교회는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남전리 618-1에 있다. 2019년 기준 김연태 담임목사가 재직하고 있으며, 아동 포함 교인 160명이 출석하고 있다. 예배당과 교육관과 건물, 종탑, 나라사랑동산이 있다. 나라사랑동산에는 순국열사비, 4·4만세운동 시비, 100주년 기념비, 박병호 선생 순교비를 세웠다.
[의의와 평가]
남전교회는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이며, 100년 넘은 당회록을 보존하고 있다. 1919년 익산의 3.1운동인 솔내 4.4 만세운동은 남전교회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만세 운동이었다. 만세 운동 전날에는 남전교회 교인들이 대형 깃발과 현수막,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였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남전교회 교인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