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유후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44
한자 柳後聖
영어음역 Yu Huseong
이칭/별칭 류후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의관
성별
대표관직 고양군수|부평부사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의관.

[활동사항]

유후성(柳後聖)은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기록에는 1642년(인조 20) 7월부터 12월까지 구로 지역을 관할하는 부평부사를 지낸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 1646년(인조 24)부터 3년간 왕실의 전의(典醫)를 지냈고, 1657년(효종 8)에는 고양군수에 임명되었다. 1659년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승하하자, 당시 6명의 어의(御醫)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 중 신가귀(申可貴)는 교살되었으며, 유후성조징규(趙徵奎)는 겨우 사사(賜死)를 면하고 유배에 처해졌고, 박군(朴頵)·이후담(李後聃)·최곤(崔梱) 등은 곤장 100대의 처벌이 내려졌다. 현종 즉위 후에 다시 복직되어 어의로서 내의원에 봉직하였다. 조선시대 의관으로서는 전례가 드문 높은 품계에 제수되어 많은 논란이 있었다. 1667년(현종 8) 왕이 대비를 모시고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수행 의원으로 동행하기도 하였다. 왕실의 신임이 두터워 인조·효종·현종의 3대에 걸쳐 의관으로 활약하는 한편, 경기도 내 읍(邑)의 수령을 예닐곱 차례나 역임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658년(효종 9) 왕의 병의 쾌차하자 그 공로로 숭록대부(崇祿大夫)에 가자(加資)되었고, 1662년(현종 3) 대왕대비의 병이 완쾌되자 그 공으로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특가(特加)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