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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539
한자 李景嚴
영어음역 Yi Gyeongeom
이칭/별칭 자릉(子陵),현기(玄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79년연표보기
몰년 1652년연표보기
본관 연안(延安)
대표관직 한성부판윤|부평부사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릉(子陵), 호는 현기(玄磯). 아버지는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이다.

[활동사항]

이경엄(李景嚴)[1579~1652]은 1610년(광해군 2) 현감으로 있으면서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는 문제에 대하여 중앙 및 지방 관리들에게 의견을 수렴하였는데, 현감인 이경엄은 “이 일은 중대하여 소관들의 의논할 바가 아니며 의정부에서 잘 처리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1624년(인조 2) 배천군수[白川郡守]로 있으면서 성실하게 근무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1628년(인조 6) 가례(嘉禮) 때 사옹원정(司饔院正)으로 있던 중 가자(加資)를 받았으나, 얼마 뒤 압록강 남쪽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의 문안사(問安使)로 임명되었으면서 지체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이후 1632년(인조 10) 12월부터 1634년 8월까지 지금의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부평부사를 지냈다. 1647년(인조 25)에는 연천군수로 있으면서 수령으로 천거한 사람이 적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49년(인조 27)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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