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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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定王后 |
영어공식명칭 | Hyojeong Wanghu |
이칭/별칭 | 명헌왕후,명헌대비,효정성황후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정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경릉에 묻힌 조선 후기의 왕비.
[개설]
효정왕후(孝定王后)는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憲宗)의 계비(繼妃)이다.
[가계]
효정왕후의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이다. 1844년(헌종 10)에 헌종과 가례를 올렸다. 딸을 낳았지만 일찍 죽었다.
[활동 사항]
효정왕후는 1844년 왕비에 책봉되었다. 헌종의 원비(元妃) 효현왕후(孝顯王后)가 1843년(헌종 9) 16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새로운 왕비가 필요하여 효정왕후가 간택된 것이다. 1849년 헌종이 사망하고 철종이 뒤를 잇자 대비가 되었고, 1857년(철종 8)에 순조(純祖)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사망하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1897년(광무 1)에 대한 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되기도 했다. 효정왕후는 1904년(광무 7)에 경운궁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효정왕후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있는 경릉(景陵)이다. 경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세 봉분을 나란히 배열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이는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삼연릉의 형태이다. 정자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왕후,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원래 경릉은 선조(宣祖)의 목릉(穆陵)이 있던 곳이었다. 1630년(인조 8)에 물길이 있고 풍수상 불길하다는 의견에 따라 목릉을 현재의 위치로 천릉(遷陵)하였는데, 막상 천릉 작업을 시작하니 물이 없었다. 이에 헌종의 원비 효현왕후가 1843년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을 조성하였다. 1849년 헌종이 사망하자, 효현왕후의 능 오른쪽에 헌종의 능을 조성하였다. 1904년(광무 8)에 효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이곳에 다시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70년 동구릉 전체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효정왕후는 1908년에 효정 성황후(孝定成皇后)로 추존되었다. 효정왕후의 신위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셔 놓은 종묘에 봉안되어 있다. 종묘에서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전통 제례 의식으로 대제를 봉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