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194 |
---|---|
한자 | 浦會村公所 |
이칭/별칭 | 상색 공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주영 |
최초 설립지 | 포회촌 공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
---|---|
성격 | 천주교 |
[정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개설]
포회촌 공소에서 ‘포회촌’은 개울이 모이는 동네라는 뜻의 지명이다. 실제로 가평읍 상색리의 상색천이 마을 앞으로 모여 흘러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포회촌 공소는 백둔리·서파·조종안 공소와 함께 1909년부터 본당별 교세 통계표에 나타나는 공소이다. 그러나 공소 설립 시기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1909~1910년 교세 통계표에 처음 나타날 때 신자가 81명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에 교우촌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포회촌 공소의 신자들은 다른 곳에서 이미 옹기점을 운영하다가 이곳으로 집단 이주하여 옹기점 마을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당시 가평읍 대곡리의 가평초등학교 자리에서 옹기를 굽고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을 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옹기점은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주된 생업이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차츰 옹기를 굽던 사람들이 노령화되고 청년들이 일자리와 주거를 찾아 도시로 나가면서 옹기점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당시 신자들의 집터와 옹기를 굽던 가마터는 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