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5086 |
---|---|
한자 | 權仁圭 |
이칭/별칭 | 소은(巢隱),인규(仁奎)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규대 |
[정의]
개항기 강릉 출신의 의병장.
[개설]
권인규(權仁圭)는 저명한 유학자로서 강릉 유림의 지도자였다.
[가계]
본관은 안동, 호는 소은(巢隱), 또 다른 이름은 인규(仁奎)이다. 아들 권종해(權鐘海), 손자 권기수(權基洙)와 더불어 3대가 의병 운동에 투신한 의병 운동 사상 두드러진 가문이다.
[활동 사항]
권인규는 1843년(헌종 9) 강원도 강릉시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경기도 여주 일원에서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던 민용호(閔龍鎬)가 그를 찾아왔다. 민용호는 경기 의병 진영의 하사(下沙) 안승우(安承禹)의 합진 권유를 사양하고 관동 지방 진출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강릉의 권인규를 찾은 것이다. 당시 민용호는 권인규로부터 의병 운동의 방향을 상세히 지도받았다고 한다. 그 후 민용호는 영동 일대의 의병진과 연합하였고, 산군(山郡) 지방의 포수를 모집하여 영동 9군 도 창의소(嶺東九郡都倡義所)를 설치하고, 이병채(李秉採)·최중봉(崔重峰) 등의 의병장을 규합하였다. 이 무렵 권인규는 민용호와 이병채 등에게 편지를 보내 의병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예안 창의소에 답하는 통문」, 「창의 포고문」, 「창의 통문」, 「관동 창의소 포유문」 등을 지어 각 고을의 의병 운동을 격려하고 제 인사들의 참여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1899년(고종 36)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권인규가 지은 각종 문서는 아들 권종해가 『소은 창의록(巢隱倡義錄)』이라는 제호로 묶어 내었다. 이 책은 의병 운동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