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일제가 한국 금융 지배를 위하여 대구농공은행과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여 설립한 은행. 경상농공은행은 1908년 일제가 한국에 대한 금융 지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구농공은행과 진주농공은행을 합병하여 설립한 은행이다. 1918년 10월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폐지되었다....
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교육기관. 대구사립사범학교는 1906년 3월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학교 설립에 매진하라는 대한제국 황제의 칙유와 1,000원의 하사금을 매개로 하여 달성군수 김한정과 함께 관덕정(觀德亭)[관덕당(觀德堂)], 고예재(考藝齋)를 수리하여 개교하였다. 관덕정은 대구읍성의 남문 격인 영남제일관 밖에 있었다. 대구사립사범학교 설립에 참여한 발기인과 기금 조성...
개항기 대구에 일제가 어음의 유통 저지 목적으로 설치한 금융기관. 일제는 1905년 화폐 정리 사업 직후 금융제도를 은행의 신설보다는 창고 및 어음 지급보증 등 전통적인 금융 기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일제는 1905년 9월 「수형조합 조례」 및 「약속수형 조례」를 공포하고, 한국의 전래 어음의 유통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어음조합을 설치하였다. 대구어음조합[이칭 대구수형조...
1911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한국전력공사로 이어진 전기회사. 대구전기회사(大邱電氣會社)는 1911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발전소 공사에 착수하였다. 1912년 9월 말 전기 공급을 위한 외선공사를 종료하였고 곧바로 내선 공사에 착수하였다. 1912년 12월 23일 전기를 생산할 발전기 설비를 끝낸 뒤 시험 운전을 거쳐 1913년 1월 송전을 개시하였다. 점차 사업의 범위...
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는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강요에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해산당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간부들과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계몽 운동가·관료. 박해령(朴海齡)[1857∼1920]은 경상북도 달성군 하빈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2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달성 광문사] 문회가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 명칭을 대동 광문회(大東廣文會)로 바꿀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자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동 광문회 회장을 비롯...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병학(李柄學)[1862~1942]은 1862년 10월 17일에 태어났다. 대구에서 기업인으로 활동하며 대구교풍회(大邱矯風會)·자제단(自制團)에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경제인. 이석진(李錫鎭)[1870~1932]은 한말·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했던 경제인이다. 카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쓴 『대구이야기(大邱物語)』에 의하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석진은 ‘풍채가 당당하고 성격이 온후하며 독실한 군자형’이었다고 한다. 카와이 아사오는 일찍이 대구에 들어와 『조선민보(朝鮮民報)』를 발행하였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자본가. 이영면(李永勉)[1878~1931]은 1878년 2월 27일 태어났다.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였고, 대구빈민구제회 설립 등의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계몽운동가이자 경제인. 이종면(李宗勉)[1870~1932]은 대구에서 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고, 주식회사 대동사(大東社)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호는 오정(悟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