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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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忠榮 |
영어음역 | Yi Chung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성격 | 법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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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
성별 | 남 |
생년 | 1908년 |
몰년 | 1987년 |
본관 | 광주 |
대표경력 | 대구부·함흥부·광주부·평양부 복심법원 판사,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변호사 |
[정의]
일제강점기 및 건국 이후 칠곡 출신의 법조인.
[개설]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인 이충영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으로 활동하다 6·25전쟁 때 납북 당해 북한에서 사망했다. 납북 후의 구체적인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편 남한에 남겨졌던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모두 성공함으로써 하버드대학 한국학과 와그너 교수는 ‘한국의 전통명가’라고 평가했다.
[활동사항]
이충영(李忠榮)은 1908년 칠곡군 지천면 신리에서 광주이씨 이상준(李相駿)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였고, 일본 큐슈 구마모토 제5고등학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1932년에 졸업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1934년 조선총독부 사법관 시보를 시작으로 대구부·함흥부·광주부·평양부 등의 복심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였다. 1943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변호사로 등록하여 활동하던 중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고, 서울이 북한의 점령 하에 있던 1950년 8월 10일에 납북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낸 경력으로 인해 체포되었다가 인민군이 후퇴할 때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납북 후 1987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충영의 장남 이수성은 서울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 차남 이수인은 영남대 교수와 국회의원, 삼남 이수윤은 한국교원대 교수, 사남 이수억은 아더앤드선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