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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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鵬 |
영어공식명칭 | Jeong Bung |
이칭/별칭 | 정청송(鄭靑松),운정(雲程),신당(新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순한 |
출생 시기/일시 | 1467년 - 정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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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92년 - 정붕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00년 - 정붕 사헌부지평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504년 - 정붕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덕으로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509년 - 정붕 청송도호부사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512년 - 정붕 사망 |
출생지 | 선산도호부 신당포 - 경산북도 구미시 선산읍 |
거주|이주지 | 선산도호부 신당포 - 경산북도 구미시 선산읍 |
수학지 | 신포서당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 |
외가|처가 | 선산도호부 신당포 - 경산북도 구미시 선산읍 |
유배|이배지 | 영덕 - 경상북도 영덕군 |
묘소|단소 | 선산 무을 복우산 - 경산북도 구미시 |
사당|배향지 | 덕림서원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초곡리 |
사당|배향지 | 금오서원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593-31(원리 276번지)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해주 |
대표 관직 | 청송도호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청송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개설]
정붕(鄭鵬)[1467~1512]은 조선 전기 선산도호부 출신의 문신이다. 김굉필의 문인으로 영남사림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1509년(중종 4) 청송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가계]
정붕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이며, 청송도호부사를 역임하여 정청송(鄭靑松)이라고도 불렸다. 증조할아버지는 정희언(鄭希彦), 할아버지는 정유공(鄭由恭), 아버지는 현감을 역임한 정철견(鄭鐵堅), 어머니는 생원 옥형종(玉荊宗)의 딸 의령옥씨(宜寧玉氏)이며, 정붕의 첫째 부인은 부장(部將) 이엽(李曄)의 딸 숙인(淑人) 성산이씨(星山李氏), 둘째 부인은 현감 신담(申澹)의 딸 숙인(淑人)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활동 사항]
정붕은 김종직의 문인이자 작은아버지인 이조참판 정석견(鄭錫堅)에게 학문을 배웠고, 성장해서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86년(성종 17) 22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정붕은 당시 천문과 산학 연구에 정여창 등과 함께 추천될 만큼 신진 문신으로 촉망받는 학자였다. 이후 홍무관수찬·교리·사헌부지평 등 언관과 대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교리로 있을 때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덕으로 귀양 갔다.
정붕은 중종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홍문관교리로 제수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우의정 성희안(成希顔)의 추천으로 1509년 청송도호부사로 복직하였고, 1512년(중종 7) 9월 청송도호부사 재임 중에 세상을 떠났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사람됨이 국량이 크고 원대한 데다가 학식이 높고 밝았으며, 자기주장을 세우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거슬림이 없었다.”라고 평가되어 있다. 청송도호부사 재임 중 청렴하였고 선정을 베풀어 군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중 성희안과의 편지 일화는 유명하다. 성희안은 청송의 잣과 꿀이 유명하다며, 친구인 청송도호부사 정붕에게 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정붕은 “잣은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백성들의 집 벌통 속에 있으니 내가 부사라 해도 어찌 이것을 구할 수 있으리오”라는 편지로 답장하였다. 답장을 본 성희안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정중히 사과했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실기로 『신당실기(新堂實記)』가 전한다.
[묘소]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복우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금오서원(金烏書院)과 김천시 남면 초곡리에 있던 덕림서원(德林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