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68
한자 金萬千
영어공식명칭 Kim Mancheon
이칭/별칭 문팔(文八),남계(南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김만천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5년 - 김만천 경성공업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17년 - 김만천 현서면 화목주재소 근무
몰년 시기/일시 1975년 12월 31일연표보기 - 김만천 사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27일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경성공업학교 - 서울특별시
활동지 현서면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지도보기
활동지 현서주재소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지도보기
활동지 안덕면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지도보기
활동지 현서면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지도보기
묘소 덕성동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 지도보기
성격 행정가
성별
대표 경력 현서면 서기|현서주재소 순사|안덕면장|현서면장

[정의]

일제강점기 및 현대 청송 출신의 행정가.

[개설]

김만천(金萬千)[1894~1975]은 일찍이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를 졸업하고 면서기, 일제 경찰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3.1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되기도 하였다. 1927년 이후 안덕면 면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신국가 건설에 참여하여 청송 지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팔(文八), 호는 남계(南溪). 1894년 경상도 월성군 현곡면 가정리[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서 아버지 김수정(金壽鼎)과 어머니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 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동[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모계리]으로 이거하였다.

[활동 사항]

김만천은 일찍이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다가 1915년 서울에서 경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현서면사무소 서기(書記)로 근무하였다. 김만천은 평소 민족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처삼촌 김기수(金基洙)를 비롯하여 조현욱(趙炫旭), 이기(李琪) 등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던 민족지사들과 교류하였다. 김만천은 1917년 대구로 가서 일본 경찰에 투신하였다. 그렇지만 대구·안동 등지의 애국지사들과 연락하며 활동하였고, 어려운 일에 처한 한인들의 일을 해결해 주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져 청송으로 좌천되어 화목주재소에 근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김기수, 조현욱, 이규백(李圭伯), 신태휴(申泰烋) 등에게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3월 26일 현서면 화목장터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김만천화목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소지하고 있던 총을 부러뜨리고 만세시위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만천조현욱 등과 함께 의성 헌병분견대(憲兵分遣隊)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탈출하였다. 그 후 안동군 길안면 소일동 누나 집에 피신하였다가 안동, 의성 등지를 전전하며 피신하다가 귀환하였다.

김만천은 1927년 청송군 안덕면 면장(面長)으로 근무하면서 안덕면 명당동 사설학원(私設學院)과 지소동 간이학교(簡易學校)를 설립하였다. 광복 후 1945년 현서면 면장에 추대되어 도로 개설과 수리사업에 참여하였으며, 1946년 현남국민학교[지금의 현남초등학교]를 설립하였고, 1948년 안덕중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외 1948년 7월 청송경찰서 후원회 회장, 의용경찰대 및 향토방위군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1950년 6.25전쟁 때 반동분자로 지목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국군의 반격으로 총살을 면하였다. 1975년 12월 31일 사망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덕성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64년 1월 8일 경상북도지사 김인 외 표창장 11회를 비롯하여 각종 감사장을 다수 받았으며, 각종 사회단체 및 정당의 임원으로 위촉된 것이 전후 23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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