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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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鶴齡 |
영어공식명칭 | Shim Hakryeong |
이칭/별칭 | 연수(延壽),도곡(道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521년 - 심학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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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4년 - 심학령 도치동 이주 |
활동 시기/일시 | 1547년 - 심학령 종부시주부 천거 |
몰년 시기/일시 | 1586년 - 심학령 사망 |
거주|이주지 | 청송도호부 도치동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묘소|단소 | 도치동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사당|배향지 | 요동재사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청송 |
대표 관직 | 종부시주부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연수(延壽), 호는 도곡(道谷).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심필윤(沈弼允), 어머니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손한상(孫漢相)의 딸 숙인(淑人) 일직손씨(一直孫氏), 할아버지는 현릉참봉(顯陵參奉)을 지낸 심손(沈遜),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심태산(沈太山), 부인은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상지(李祥之)의 딸 진보이씨이다. 심학령의 선대는 청송 지역을 떠나 상경종사(上京從仕)하였지만, 심태산 대에 들어와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심학령(沈鶴齡)[1521~1586]은 노수신(盧守愼)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특히 경전에 밝았으며, 효성이 지극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1544년(중종 39)에는 청송도호부의 도치동(道致洞)[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일대]으로 이주해 도곡정사(道谷精舍)를 짓고 이웃과 집안의 자제들을 교육하였다.
1547년(명종 2) 독행(篤行)으로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로 천거되었다. 그해 을사사화의 연장인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이 일어났는데, 스승 노수신이 연루되어 진도(珍島)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심학령은 진도로 가서 수개월 동안 스승을 모시며 학문을 배웠다. 1549년(명종 4) 충주목(忠州牧)에서 기유옥사(己酉獄事)가 일어나 강유선(康惟善)이 죽임을 당하자, 시세를 한탄하고 비통해 하는 시문을 지었다. 1569년(선조 2) 고을 사람 조지(趙址)와 함께 청송향교(靑松鄕校) 명륜당(明倫堂)에서의 강회(講會) 개최를 논의하였는데, 이때 조지가 향음주례(鄕飮酒禮)에 대해 물어보자, 그 절목(節目)의 대략을 써주었다.
[학문과 저술]
유고로 『도곡일고(道谷逸稿)』가 전한다. 『도곡일고』는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선조 연간까지 청송심씨 10대의 시문집인 2권 2책의 『청기세고(靑己世稿)』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도치동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는 심손·심학령·심청(沈淸)의 재사(齋舍)인 요동재사(堯洞齋舍)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