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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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德符 |
영어공식명칭 | Shim Deokbu |
이칭/별칭 | 득지(得之),노당(蘆堂),허당(虛堂),허강(虛江),공정(恭靖),정안(定安),청성백(靑城伯),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말 조선 초 청송 출신의 문신.
[개설]
심덕부(沈德符)[1328~1401]는 고려 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사신으로 여러 차례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도왔으며, 조선 건국 후 나라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하였다.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부친은 이조정랑을 지낸 심용(沈龍), 부인은 낭장 문필대(門必大)의 딸이다. 아들로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 세종의 장인이자 소헌왕후 심씨의 부친인 심온(沈溫), 태조 이성계의 둘째 딸 경선공주(慶善公主)의 부마인 심종(沈淙), 그리고 심정(沈泟)이 있다. 증조할아버지가 청송심씨의 시조 심홍부(沈弘孚)[?~?]이다. 심덕부의 가문은 심덕부의 상경종사로 조선 전기 훈척(勳戚)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활동 사항]
심덕부는 고려 충숙왕 말기에 음보로 사온직장동정(司溫直長同正)으로 출사한 이후, 좌우위녹사(左右衛錄事)를 거쳐 1364년(공민왕 13) 수원부사(水原府使)가 되었으며, 공민왕 말년에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가 되었다. 우왕 즉위 후 우상시(右常侍)를 거쳐 1375년(우왕 원년)에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승직되었다. 이어 밀직부사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로 임명되었다. 1376년(우왕 2) 10월에 동강원수(東江元帥)로 임명되었으며, 1377년(우왕 3) 8월 왜적이 신주(信州)·문화·안악·봉주(鳳州) 등지를 침공하여 도순문사로 참전하였으나 패하였다. 1378년(우왕 4) 8월 왜구가 연안부와 해주를 침입하자 나세(羅世)와 함께 전함을 영솔하고 여러 섬에서 왜구를 광범위하게 색출하였다. 10월 판밀직사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서 서해도원수를 겸하여 여러 차례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1380년(우왕 6) 진포(鎭浦)에 침입한 왜구를 도원수 나세와 함께 최무선(崔茂宣)이 제조한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381년(우왕 7) 정지(鄭地)를 대신하여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로 해도원수(海道元帥)에 임명되었다. 1384년(우왕 10) 12월에는 요동군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이성계를 동북면 도원수로, 문하찬성사 심덕부를 상원수로 임명하였는데, 북청과 함주의 경계인 요외평(要外平)에서 왜구를 만나 토벌하였다. 1385년(우왕 11) 10월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는데, 귀국 후에 청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388년의 요동 출병 때는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로서 조민수(曺敏修) 휘하의 좌군에 속하였는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도왔다. 1389년(창왕 원년)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임명되었다.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공을 세워 이성계, 정도전(鄭道傳), 정몽주(鄭夢周)와 더불어 9공신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공양왕 즉위 후에 문하좌시중 경기좌우도 평양도통사(門下左侍中京畿左右道平壤都統使)에 올랐으며, 1390년(공양왕 2) 정월에 영경연사(領經筵事)에 임명되었다. 그 해 윤구택(尹龜澤), 조유(趙裕) 등의 무고로 황해도 토산(兎山)에 유배되었으나, 1391년(공양왕 3) 다시 기용되고 문하좌시중에 복직되었다. 1392년(공양왕 4) 4월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임명되었다. 1394년(태조 3) 9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判事) 중의 한 명으로 임명되어, 한양의 종묘·사직·궁궐·시장·도로의 터를 정하고 건설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1398년(태조 7) 9월 영삼사사(領三司事)를 거쳐, 1399년(정종 원년) 12월 좌의정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1400년) 3월 치사하였다. 심덕부는 고려 말 정치제도의 개혁과 왜구 토벌에 업적을 남겼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378년(우왕 4)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추성협찬공신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1389년(창왕 원년)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공을 세워, 충근양절익찬좌명공신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1391년(공양왕 3) 청성군충의백에 봉해지고, 중흥공신녹권을 하사받았으며, 위화도회군의 회군공신2등으로 토지50결을 하사받았다. 왕세자 이석을 호종하여 명나라에 다녀온 뒤 안사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조선 건국 후 1393년(태조 2) 회군공신1등으로 추록되고 청성백에 봉해졌다.
심덕부 신도비는 1653년(명종 18) 8월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현손인 대광보국숭록대부 우의정 심통원(沈通源)이 짓고 가선대부 전주부윤 심전(沈銓)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