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지서내습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64
한자 府東支署來襲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10월 12일연표보기 - 부동지서내습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부동지서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지도보기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좌익 무장 유격대[빨치산]

[정의]

1949년 10월 12일 좌익 무장 유격대가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던 부동지서를 습격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45년 광복 이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빨치산]은 1946년 ‘10월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과 경찰의 검거를 피해 산으로 거점을 옮겨 활동하였다. 1947년 7월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된 직후 미군정은 좌익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였다.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던 좌익 세력은 보현산(普賢山)[1,124m]을 비롯한 청송 지역 주요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무장 유격 투쟁으로 전환하였다.

미국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된 직후인 1947년 9월에 소련과의 협의를 포기하고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하였다. 1947년 11월 유엔은 총회를 열어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한국에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선거를 감독하기 위해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파견되었으나 북한과 소련은 유엔의 결정에 반발하여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하였다. 1948년 2월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선거가 가능한 지역, 즉 남한에서만 총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남한 내 좌익 세력은 선거를 무산시키고 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무장 유격 활동을 강화하였다.

1948년 5월 10일 5.10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좌익 세력은 북한에서 파견된 무장 유격대와 결합하여 무장 유격 투쟁을 더욱 강화하였다. 특히 청송군 주왕산면에는 주왕산(周王山)[720.6m], 무장산(霧藏山)[640.8m], 무포산(霧抱山)[717.5m]과 부남면과의 경계의 매봉산(梅峯山)[643.5m], 영덕군과 경계의 팔각산(八角山)[628m] 등 험준한 산이 많아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이 많았다.

[경과]

1948년 10월 ‘여수·순천 10.19사건[제주 4.3사건의 잔여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한 군 부대를 제주도로 보내려고 하자 군대 내 좌익 세력이 반발하여 여수와 순천 지역을 점령한 사건]’으로 사회가 혼란해져 국군이 호남과 경상남도 지역으로 집중 투입되었다. 북한은 이를 호기로 인식하여 군사 훈련을 받은 인민유격대를 대거 남파하였다.

청송 지역에도 1949년 8월 김달삼이 이끄는 인민유격대가 남파되어 보현산을 거점으로 주왕산 등지에서 본격적인 무장 유격 활동을 벌였다. 특히 9월 이후에는 총공세를 펼쳐 청송 대부분 지역에서 크고 작은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이 있었다.

1949년 9월 국군은 좌익 무장 유격대를 진압하기 위해 ‘태백산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좌익 무장 유격대는 10월 12일 밤 11시 무렵 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100여 명이 부동지서를 공격하였다. 이에 경찰과 유격대 사이에 총격전이 일어나고 수류탄이 투척되는 등 격렬한 교전이 있었다. 교전 결과 경찰이 좌익 무장 유격대 대원 1명을 사살하고 무기를 압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경찰은 부동지서를 공격한 좌익 무장 유격대를 영일 방면의 동대산(東大山)[791m]까지 추격하여 진압에 나섰다.

[결과]

청송 지역을 포함한 영남 지역에서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이 강화되자, 국군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1949년 12월 ‘영남지구 토벌사령부’를 설치하였다. 1950년 1월 9일 주왕산에 있는 좌익 무장 유격대 근거지, 1월 17일에는 주왕산면 주산지리 갈전에 있는 근거지를 공격하여 좌익 무장 유격대 대원을 사살하고 무기 등을 압수하였다. 3월에는 경찰이 대한청년단 단원과 합동으로 주왕산을 수색하여 좌익 무장 유격대 근거지를 파괴하고 유격대 대원을 사살했으며, 4월에는 포항 방면의 비학산(飛鶴山)에 있는 조선노동당 청송군당 근거지를 급습하여 유격대원을 사살하고 체포하였다.

주왕산면에서의 좌익 무장 유격대 활동은 국군과 경찰의 연이은 진압 작전으로 약화되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6.25전쟁 중에 좌익 무장 유격대가 북한군 유격대와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무장 유격 활동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좌익 무장 유격대의 활동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후 주왕산 등지에서 좌익 무장 유격대의 산발적인 활동이 있었으나, 1956년 6월 무렵 완전히 진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05 행정지명 현행화 부동면 -> 주왕산면, 이전리 -> 주산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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